原 文 : 佛言 須菩提 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卽是如來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原 文 : 佛言 須菩提 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卽是如來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解 義] 『수보리야! 네 말과 같이 만일 32상으로 여래를 보는 것이라면 전륜성왕은 32상을 갖추었으니 그러면 그도 곧 여래겠구나.』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왜 또 이..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8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 觀如來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 觀如來 [解 義] 『수보리야! 네뜻이 어떠하냐? 32상으로 부처님을 본다고 할 수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이렇게 물으셨는데 청중(聽衆) 가운데 누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32상으로 부처님을..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7
第二十六 法身非相分--법신은 상이 아니다 第二十六 法身非相分--법신은 상이 아니다 [科 解] 제26분에서는 법신(法身)은 거룩한 상, 즉 복상(福相)이 아니라는 도리를 말씀하시는 대문입니다. 우리의 참 마음이 곧 여래의 법신인데 이 참 마음자리는 선이니 악이니 복이니 죄니 하는 차별상이 떨어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6
法身非相分 第二十六 法身非相分 第二十六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不(관여래부)아 須菩提言(수보리언)하되 如是如是(여시여시)니이다 以三十二相(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관여래)니이다 佛(불)이 言(언)하사대 須菩提(수보리)야 若三十二相(약삼십이..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5
原 文 : 須菩提 如來說 有我者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說卽非凡夫 是名凡夫 原 文 : 須菩提 如來說 有我者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說卽非凡夫 是名凡夫 [解 義] 일체 중생이 모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으로 산다고 그러지만 그런 것이 참말로 있는 것도 아니라 범부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중생들이 아상을 제가 만들어 놓고 제가 ..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4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如來 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卽我人衆生壽者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如來 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卽我人衆生壽者 [解 義]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역시 앞에서 금강경의 공덕이 너무나 커서 무엇으로 비유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3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科 解] 일체 중생이 본래 성불이어서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했다는 생각이 없으시며 오직 평등한 성품, 자타가 없는 진여의 법계 속에 계시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중생을 제도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곧 마음속에 교화 받을 중생이 있고 교화한 ..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2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汝等(여등)은 勿謂如來-作是念(물위여래-작시념)하되 我當度衆生(아당도중생)이라하라 須菩提(수보리)야 莫作是念(막작시념)이니 何以故(하이고)오 實無有衆生(실무유중생)하야 如來度者(여래도자)니 若有衆生(약유중생)하..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1
原 文 : 須菩提 若三千大天世界中 所有諸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持用布施 若人 以此般若波羅蜜經 乃至 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說 於前福德 百分 原 文 : 須菩提 若三千大天世界中 所有諸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持用布施 若人 以此般若波羅蜜經 乃至 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說 於前福德 百分不及一 百千萬億分 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解 義] 『수보리야! 만일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왕만한 그런 덩어리의 칠보를 ..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10
第二十四 福智無比分--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第二十四 福智無比分--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科 解] 물질을 가지고 보시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그 육신을 구제하는 것에 불과하고 금강반야의 구경법(究竟法)으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대해탈(大解脫)을 성취하고 부처를 이루게 하는 것이므로 그 공덕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 청담큰스님의 금강경 201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