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일체 유심(一切唯心)

如明 2016. 3. 2. 19:53

일체 유심(一切唯心)

 

단유언설도무실(但有言說都無實)이란 말로만 있지 실제는 그런 일이 없다.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기법칙(緣起法則) 상대성 원리로 보아도 그렇게 됩니다. 많다고 하면 벌써 부분입니다. 정말 마지막 말로 전체를 많다고 하더라도 그건 하나뿐이니까 많은 것도 아니고 사실 또 하나도 아닙니다. 더구나 많다 적다는 안 됩니다. 벌써 많다고 할 때는 적은 것, 많지 않은 것을 이미 상대하고 있으므로 그건 전체에서 그만한 부분을 빼고 하는 말이므로 그것은 전체에 비하면 적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 작다고 하는 그것이 작은 것도 아니고 작다 했으니까 그건 크다는 말도 되고 또 작지도 않다는 말도 되고 그런게 아니란 말도 되고 그럽니다. 그것은 다 환(幻)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선 꿈 밖에서 꿈을 깨어 가지고 「그대로 전체가 꿈 아니라」고 하신 그게 바로 무실무허(無實無虛)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짓말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한마디로 하자면 환의 존재이기 때문에 허망하다 실답다 하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것도 무실무허(無實無虛)하다가도 그 경지에 들어서 놓으면 참다운 것도 있고 허망한 것도 있고 그렇게도 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진 그 경지는 시간을 여의어 일체 생각이 다 끊어진 때고 무분별지(無分別智) 본래의 실상자리인데 그러면서 거기서 내내 중생살림살이와 똑같고 하지만 보고 듣고하는 마음을 지어서 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위(無爲) 무심으로 하는 겁니다. 그 경지에 가면 부처님 살림살이일 뿐이고 마음 하나뿐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여 일체가 모두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러는데, 마음이 만들었다고 하면 만든 마음과 만들어진 객관이 있게 되어 거기에는 주관 객관이 또 벌어질 수 있으니 일체유심(一切唯心)이라 지을 조(造)자 하나를 빼 버려야 알기 쉽습니다. 「오직 마음 뿐이다.」 일체가 마음이다. 그러므로 일체가 불법이다. 그런 뜻이 됩니다.

주관이 곧 객관이고 거리가 없습니다. 거울 가운데 동서남북이 있어 보이지만 이것은 빛으로 그림자로 거울 면에 나타난 것이지 거울을 뚫고 들어가서 동서남북 상하 중간이 된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꿈도 역시 그와 같아서 전체 그대로가 거리가 없는 거고 실제로 멀어 거리가 있으면서 또 그대로 없는 거고 그대로 전체가 마음이고 그러니 일체법이 개시불법(一切法皆是佛法)이고 무실무허(無實無虛)한 지경까지 하나가 되고 한 덩어리가 되어서, 주관 . 객관의 관념이 없어져서 없어졌다는 생각조차 없어지면 구공(俱空)인데 그래도 구공됐다는 잠재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의 도리가 하나로 쉽게 활용되지 않다가 점점 닦아서 수치(修治)돼 들어가면, 참 그야말로 미세한 습기(濕氣)까지 전자가 움직이고 에네르기가 움직이는 것보다 더 미세한 폭으로 움직이는 그 <습기>까지 마음에서 다 끊어지면 그때는 전체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전체를 뭉뚱그려 한덩어리로 만들어 놓는 거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라 제망중중(帝網重重)의 도리로 그 가운데는 모래도 있고 흙도 돌도 있지마는 모래 한 알 그게 또 우주 . 인생 전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전체가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큰 걸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여기 먼지 한알이 그와 같아서 그 가운데 어떤 거 하나를 들추어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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