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가 하나고 하나가 전체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 전체이면서 또 차별이 있고 고금이 있고 동서가 있습니다. 또 그대로가 없는 것이어서 고금이 아니고 현상이 아니고 모두가 아닙니다. 이 촛대가 모두 이렇게 섰는데 우주전체가 모두 이 촛대 선 자리에 같이 서 있습니다. 그 거리가 있는 게 아니고 이 촛대가 선 곳이 내내 모든 것이 선 자리이고 저기 선 것이 여기 입니다. 이와 같이 포개 있는 거리 없는 것을 보는 것이 불가사의한 신통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으니 과학적 . 철학적 . 종교적으로 따져 가지고 그 실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도 끝이 안 납니다. 자기 실상 . 마음자리만 깨쳐 버리면 그게 참 진공묘유(眞空妙有)이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불가사의입니다. 그러니 완전히 중생처럼 중생이 본 그런 자리 한바탕 있고 또 그러면서 원융무애한 그대로의 소식으로 제망중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혼란하냐 하면 조금도 그런 것이 없고 또 질서정연하냐 하면 또 거리가 없으니까 질서정연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체가 하나란 소리가 일체가 다 불법이란 소리와 한가지이니 일체법이 다 불법이고, 일체법이 다 불법이란 소리가 일체가 다 마음이라는 뜻이고 마음이 부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대로 변해서 제망중중으로 이 초 하나에 한량없는 백성이 들어가 있는 그것이 한 번에 봐도 낱낱이 따로따로 보입니다.
오색물감을 물에 떨어뜨려 놓으면 그 빛이 무슨 물감인지 우리가 이름지을 수가 없지만 부처님께서는 그걸 낱낱이 보십니다. 또 부처님은 만고에 불변하는 중생의 근본불성도 보시고 중생의 이런저런 용심도 보시고 다 보십니다. 마음을 깨닫고 보면 제 자체가 그러는 게 아니고 전부 우리 관념이고 생각이며 우리 마음이 모두 그런 장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말이 얻은 게 아니라 실제로 얻은 게 아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됐다.’그 말인데, 또 됐다 하는 것은 마치 무슨 작품을 만들 듯 새로 되는 것을 뜻하는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내가 본래 그대로 부처였다는데 쓸데없는 딴 생각을 한 번 냈던 것을 놓아 버리니까 제자리로 됐다, 본래 그렇더라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그런 일체법이 곧 일체법이 아니니 그것을 일체법이라 한다.”고 하신 것이니, 경전 다르고 촛대 다르고 접시 다르고 책상 다르고 그런 게 아니라 그건 모두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일체가 다 아니니까 하나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또 그걸 이름해서 일체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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