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무실 무허(無實無虛)

如明 2016. 3. 1. 07:57

무실 무허(無實無虛)

 

이 금강경 三十二分의 말씀이 비슷비슷하여 같은 말씀 같은데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릅니다. 약간 다른 게 아니고 많이 다르지만 나중에 결론을 맞춰 보면 똑 같은 말입니다. 이렇게 한소리를 되풀이 하지만 거기 있는 말의 조리가 각각 달라서 마치 서울역에서 하는 안내와 대구역에서 안내하는 말소리와 평양역에서 하는 안내소리가 조금씩 다르듯이 경문의 소리도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때는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게 있느냐?』고 물으시면 수보리 존자께선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일이 없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런 법도 없고 사실 얻은 일도 없으십니다.』하고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야!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는데 사실 얻긴 얻었지만 그 얻은 법이 그건 무실무허(無實無虛)해서 실다운 것도 없고 허망한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또 부처님께선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 하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조리는 결국 따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게 어떤 걸 꼭 꼬집어서 「요것이다」 할 수도 없고 또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며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 것을 몽뚱그려서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으며 또 「그것도 저것도 전부 아니다.」 그렇게 해도 안 맞고 이래도 안 맞고 저래도 안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일 물질적으로 있는 것이라면 변동조화가 있는 무상의 존재일 것이며 따라서 그렇게 변동하는 어느 한 모퉁이를 집어서 이거다 저거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마치 꿈을 깨어 보면 아무것도 아닌 허망이지만 꿈을 깨기 전엔 확실히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꿈을 꾸고 있을 때 꿈 가운데 있는 그게 참으로 있는 거냐 하면 그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실다운 것도 아니고 허망한 것도 아닙니다. 꿈속에서도 전혀 허무한 것은 아니어서 사실 배가 부르면 배가 뿌듯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말로 진실한 불변의 존재냐 하면 또 그런 것은 더구나 아닙니다. 그런데 꿈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천지만물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무실무허한 것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시는 것은 범부가 「이 마음자리, 말하는 이것은 불생불멸의 존재구나 하는 원리를 의지해서 그걸 한 번 깨달아 봐야겠다.」고 확실히 인식이 돼서 하나서부터 열까지 목숨을 걸고 할 일이 이것뿐이라고 마음 속에 깊이 작정이 되면 이것은 범부의 발심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정진해서 계행을 지키고 만행(萬行)을 닦아 점점 깊어져서 아공 . 법공 . 구공을 초월해서 뭐라고 이름지을 수 없는 그런 자리에 이르면 그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나중에 일여(一如)하게 되어 구공의 일심을 체득했다고 해서 불법이 여기까지만 되고 말았다면 그건 소승불교 밖에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외도(外道)까지라도 이 적멸(寂滅)하는 정도가 얕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다 체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도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지고 모양도 끊어지고 일체 것이 다 끊어진 그 속에 들어가 놓으면 팔만 사천 외도가 서로 모여 살며 너나 내가 똑 같다 하고 그 때는 다 실력행사합니다. 그렇지만 정도(正道) 앞에 사도가 꼼짝 못하는 것은 외도는 공을 얻어도 상대적인 내용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서 정도의 정력(定力)에는 비교되지 못합니다. 정도의 정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까지 떨어져서 그 신통이 비교도 안 되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당시에도 마왕파순(魔王波旬)이 백만억 마구니 권속을 데리고 와서 온갖 짓을 다 해도 부처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요히 앉아 계셨는데, 마왕의 하는 꼴이 하도 안타까와서 부처님께서 마왕 파순에게 「네가 아무리 그래봐도 소용없다. 그러니까 네 신통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한 번 시험해 볼테니 네가 날 이기면 내가 너한테 항복하고 법문도 안 하고 그냥 내가 열반하마.」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물 떠 자시는 물병 같은 빈 수통을 촛대처럼 세워 놓으시고는 「너 혼자 하든지, 네 권속을 다 데리고 와서 하든지, 또 삼천대천세계 중생을 다 데리고 와서 하든지, 네 재주로 시방제불을 다 모시고 올 수 있으면 일체 부처님 보살님 다 데리고 와서 하든지, 이 통을 한 번 넘겨뜨려 보아라.」 마왕은 「뭐 그것쯤이야 가만히 앉아서 넘어가라 하면 넘어갈 텐데.」 생각하고는, 자기 신통을 다 발휘했지만,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쇠줄 같은 것을 걸어가지고 마귀 권속을 다 데리고 와서 소 . 말 몰 듯이 채찍질해서 수억만명이 끌어도 끄덕도 안합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선 아무 생각도 없는 적멸을 증득했기 때문에 적멸 속에 들었을 그때에 어떤 생각을 해서 이것을 안 넘어 가게 한다든지 한 번 정해 놓으면 마음 전체, 우주 전체의 힘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 부처님께서 한 번 마음에 정하면 시방제불(十方諸佛)이 다 와서 같이 힘을 합해서 하는 것과 같이 됩니다. 이것이 제망중중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든지 듣던지 하는 것이 온갖 망상의 틈바구니에서 요것도 하나 해보자 하는 일부의 쪼각 힘이므로 그것은 망상의 힘일 뿐입니다.  그러니 마왕 파순은 할 수 없이 필경에는 항복을 하고 맙나다.

우리 육체의 힘도 실제로 알고 보면 참는 데서 나옵니다. 금생에 많이 참으면 내생에는 아주 장사가 됩니다. 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있다가 죽을 시간이 되면 앓지도 않고 돌아앉아 죽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정력을 얻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지만 얻었다 하는 것은 즉시비득 곧 얻은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所謂得法卽是非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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