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도 얻음도 없다.
세간에서는 국민학교로부터 대학을 나와서 결혼을 하고 사회에 진출(進出)하는 개체성장(個體成長)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래서 졸업한 학교가 있고 배운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평생토록 기억하여 이용을 해야 하는 소득(所得)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법(佛法)을 배우는 것은 불법의 맨 첫자부터,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부터 배울 것도 없고 수도할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무소득(無所得)을 목표로 합니다. 제구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에서 말한 소승불교의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이 다 내가 「아라한」이란 생각이 없고 맨 처음부터 불교의 원리를 배워서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미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최면(催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강제최면(强制催眠)하는 정도까지만 돼도 내 정신이 통일되어 있거니 하는 관념(觀念)이 없습니다. 정신통일이 되어 있지만 통일된 줄도 모르고 있고 그런 생각 가질 필요도 없고 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사람도 아무것도 배울 것 없고 깨달을 것도 미할 것도 없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선지식(善知識)이나 보살이나 부처님도 다 그런 사상(思想)입니다. 완전한 대성자(大聖者)가 되기 전에는 감기 몸살이 들면 쌍화탕(雙和湯)이라도 먹어야 하고 병원에 가야겠구나 하지만 쌍화탕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건강하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듯이 불법 배우는 것도 육체가 무슨 소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래의 마음자리 그대로가 부처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머지는 다 허튼 소리고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해라 하는 것도 부득이 해서 다른 종교에서처럼 천당(天堂)에 가서 늘 편안하게 살려고 하나님에게 어기지 않고 늘 복종(服從)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지도자의 부하(部下)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던 진리를 깨달으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마음자리 그대로가 곧 진리이니 이 자리를 깨달아야 하겠다는 것을 확인할 때 비로소 불교 믿는 냄새도 나고 불교 믿는 신도이며 참다운 신행(信行)이고 그렇습니다.
금강경의 원리를 들어서 배운 그때부터, 공(空)의 도리(道理)를 증득(證得)해 놓은 그때부터 이런 경계가 나타납니다. 앞으로 금강경을 얼마를 더 배우더라도 우리가 배운 것은 남길 것 없는 것을 배우니까 남겨 놓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남길 것 없는 그 자리가 빨리 증득되지 않으니 이젠 듣는 게 주장(主張)이지만 쓸데없는 것 자꾸 듣는 것이고 간직할 것 하나도 없고 지식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한 뒤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 전에도 아무것도 소득(所得)이 없는 것을 배우고 법(法)을 줄 것도 없고 애초에 주고받고 얻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보리 존자께서 실로 얻은바 법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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