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原 文 : 須菩提 譬如有人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言 甚大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如明 2015. 12. 3. 06:35

原 文 : 須菩提 譬如有人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言 甚大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解 義] 『수보리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몸의 크기가 백두산만 하다든지 지구덩이만 하다면 이 사람의 몸이 큰 것이냐, 안 큰 것이냐?』 하고 엉뚱한 말씀을 물으십니다. 여기서 수미산은 지구를 말합니다. 왕은 제일 큰 것을 뜻하니 산왕(山王)이라 함은 왕산(王山)입니다. 가령 한국은 백두산(白頭山)이 왕산이고 세계에서는 히말라야산이 왕산이 될 것입니다. 「왕산만한 몸뚱이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몸이 큰 것이냐」하고 물으심에 대해 수보리는 『아주 크옵니다. 왜냐 하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은 몸 아닌 것을 큰 몸뚱이라 하셨기 때문이옵니다.』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의문되는 것은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말씀 다음에 수미산만한 몸뚱이 이야기를 말씀하신 논리(論理)의 연결입니다. 앞의 말과 뒤의 말의 뜻이 서로 통하지 않으니 그 까닭은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응무소주(應無所住)해서 이생기심(而生其心)하라. 아무 조건 없이 중생구제해 주고 보살행 하라. 소승 모양으로 적멸만 지키지 말고 중생을 제도해 복을 닦으라. 아무 생각 없이 해야 공덕이 크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도 크다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또 기묘(奇妙)한 턱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수보리야! 비컨대 어떤 사람의 몸이 저 수미산왕만 하다면 그 몸뚱이가 크냐 안 크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니 또 수보리 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참 굉장히 큰 몸입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오면 부처님께서 몸뚱이가 아니라고 설명하셨기 때문에 크다고 합니다.」 소나무에 감나무 접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말씀이지만 앞에 한 말씀과 앞으로 나오는 말씀과 자세히 보면 엉뚱한 말씀도 아니고 동문서답(東問西答)도 아니고 앞뒤 조리(條理)가 딱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말씀한 내용을 여기서 종결짓는 구절(句節)인데 보통 책 소설 보듯이 「여시아문 보살마하살」하고 읽어 넘어 가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정도로 하고도 법문 들었다고 참배하고 가기는 갑니다마는 그것은 남의 잔치 구경한 것밖에 안 됩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나오기 전에부터 지금까지 「큰 것이 큰 게 아니고 있는 게 있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게 없는 것이 아니며 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32상(三十二相)이 32상 아니라」고 전부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에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 諸相非相 卽見如來)「모든 상이 상이 아니다. 현상계가 현상계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확실한 존재가 아니라 그지없이 허망한 존재라고 할 수도 없이 덧없는 것들이다. 이 모든 현상이 현상 아닌 줄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고 한 이 말씀을 대표적으로 들어서 「금강경 사구게」(金剛經 四句偈)라 그럽니다. 이미 32상(三十二相)이 32상도 아니고 몸뚱이가 몸뚱이 아니라고 그랬으니 사실 그대로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미산이 아니라 우주덩어리만 하다고 하셨더라도 그것은 없는 것이며 비신(非身)이고 비상(非相)이라는 말입니다. 수미산만 하다고 거기에 걸려서 그러는데 「부처님 32상이 아니고 또 중생이 중생 아니고 현상계가 현상계도 아니고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이다」라는 것을 다시 설명한 것입니다. 중생들은 이런 사람들을 봤다면 「오늘 큰 산만한 사람 봤다」고 모두 밥만 먹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하고 야단인데 그러면 벌써 거기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불자는 신도거나 선남선녀거나 비구 비구니거나 그렇게 큰 걸 봐도 크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게 다 모두 꿈속이고 그게 실지 있는 게 아니고 환(幻)의 존재여서 물질적으로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현재 파멸(破滅)되는 과정에 있는 비상(非相)으로 봐 버립니다. 「아까 그 사람 굉장히 크네」하고 큰 것 작은 것 분별하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에 떨어져 거기에 주한 사람이니 번뇌망상에 쌓여서 7전8도(七顚八倒)로 일어섰다 자빠졌다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보리 존자께서 한술 더 떠서 「참 큽니다」 이렇게 나온 겁니다. 그것을 속아서 대단히 크다고 한 것 같으면서도 곧 「부처님께서 그 몸뚱이가 몸뚱이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걸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엉터리로 크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 대답입니다. 우리가 이론으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큰 사람 하나 만났을 때 그 생각 놓치기 쉽습니다. 크다는데 그만 다 잊어버리고 주해 버립니다. 산을 보면 큰 데 넘어가고 꿀을 먹으면 달콤한 맛에 빠져서 다 잊어버립니다. 그것은 견성(見性)한 이도 혹 어쩌다 24시간 제대로 가다가도 속는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속지 않도록 도가 아주 높아져서 잠도 없어지고 번뇌망상도 없고 열반(涅槃)도 아니고 생사(生死)도 아닌 신비한 지경에 합치(合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논리상(論理上)으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란 말이 모순(矛盾)됩니다. 응무소주면 응무소주고 이생기심이면 이생기심이지 어떻게 「내는 게 안 내는 거고 안 내는 게 내는 거」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수보리 존자가 크다고 한 말씀은 바람소리나 물소리같이 아무 뜻이 없는 대답입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이것은 크니 작으니 말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은 다음에도 많이 나옵니다. 앞에서도 이미 「32상(三十二相)이 32상이 아니므로 그래서 32상이라 했고, 일체중생이 곧 중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중생이라 한다.」 그랬으니 여기서는 직접 사실적(事實的)인 실례(實例)를 들어가지고 도가 7전8도(七顚八倒)로 움직이지 않는가 하고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선종(禪宗)에 보면 선지식(善知識)이나 도인들끼리는 별짓을 다 해서 흥청거리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야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점잖게 말씀하셔서 어디까지나 범부중생이 알아듣도록 고구정녕(苦口丁寧)으로 입이 닳도록 설명을 하시느라고 이렇게 순수하게 말씀하신 것이고 수보리 존자와 부처님 사이에는 그런 정도라도 척척 넘어갑니다. 도인들끼리 법담(法談)할 때에도 그야말로 석화광음(石火光陰)으로 찰나에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