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原 文 :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 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 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如明 2015. 12. 2. 08:08

原 文 :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 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 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解 義] 부처님께서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 마하살들은 뻑뻑이 마땅히 이와같이 청정한 마음을 낼 것이다.』 하셨는데 무심한 것, 곧 청정심이 드러나도록 수도를 하고 그래서 견성(見性)하자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전생의 과거업(過去業)이 있어서 처음 견성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래도 업이 들락거립니다. 그러니 아주 본성(本性)에 깊이 들어서면 모르지만 이제 처음으로 초견성(初見性)쯤 해서는 고운 여자는 한번 더 쳐다보게 되고 행동만 안 하지 그런 것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또 당부하시느라고 「이렇게 청정심을 내라」고 하신 것이니 이런 것은 선부촉제보살(善付囑諸菩薩) 선호념제보살(善護念諸菩薩), 곧 「모든 보살들을 잘 당부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설교할 때도 내가 잘하거니 남모르는 소리를 하거니」 그런 생각이 있으면 불교를 설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소견대로 틀렸거나 잘 알았거나 얘기한 것이고 또 듣는 사람도 들어서 부처되는 길을 확실하게 바로 알기만 하지 누구한테 들었다 할 필요도 없고 다만 바른길 그대로 바로 알아 가지고 바로 갈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정심」,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불응주색(不應住色)하고 생심(生心)」하라 하셨는데, 나는 여기다 토를 답니다. 보통은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하며 뻑뻑이 색에 주하여 생심(生心)하지 말며」 이렇게 새기는데, 나는 색에 주하지 말고 생심하라. 「마음을 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생심」위에 「하고」토를 달아서 해석합니다. 「네 소유 재산 있거든 내 재산이라 생각하지 말고 있는 사람에게 주지 말고 없는 사람에게 주라」 그 말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도 같은 이유로 「뻑뻑이 마땅히 주한 바 없이 어디고 마음이 걸린 바 없이 조건 없이 마음을 내어서 보살행을 하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이것이 보살행(菩薩行)이고 청정한 마음을 내어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청정한 마음자리만 깨달아 가지고 견성했다 하여 가만히 있으면 나한(羅漢)·소승(小乘)이 되어서 거기에 굳어 가지고 중생제도(衆生濟度)하기를 싫어하게 되고 그러면 불과(佛果)를 증득(證得)할 수 없고 아무리 해 봐야 소승나한(小乘羅漢)밖에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만일 뻑뻑이 마땅히 색에 주하지 말고 생심하라(不應住色 生心). 또한 성향미촉법에 주하지 말고 생심하라(不應住聲香味觸法 生心).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 「색에 주해서 생심하지 말고」 이렇게 새기는 경우에는 나한들 모양으로 염세주의자(厭世主義자)가 되어 가만히 정적(靜寂)만 지키고 앉아서 침공체적(沈空滯寂)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허공처럼 빈 것, 진공에 가라앉고(沈空), 적적(寂寂)한데 체했다 고요한데 걸렸다(滯寂)는 뜻입니다.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보살행(菩薩行)은 천당 지옥으로 중생을 쫓아다니며 제도(濟度)해 주고 아무 보수(報酬)도 생각 없이 하면 그것은 안 한거나 한가지고 안 한 것도 아니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자꾸 정적(靜寂)만 지키려 하고 어디 가서 설법(說法)도 하고 이 일 저 일 돌아다니다 보면 이것 참 손해 아니냐, 망상 아니냐 하면서 나한테 며칠 쉬어도 될 텐데 지독한 업보중생(業報衆生)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습니다. 「아 수고한다.」 칭찬이나 하면 좋을 건데 같은 말이면 업보(業報)라 하고 망상이라 욕한다고 싫게 들으면 욕도 아니고 칭찬도 아닌 말을 가지고 그렇게들은 내가 또 잘못 들은 것입니다. 아무데도 머무름 없이 아무 조건 없이 응무소주(應無所住)해서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나쁘니 하지 말고 중생을 위해서 보시하고 제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미했다 깨달았다 하는 게 다 거짓말인데 또 거짓말이지만 중생의 현실 세계에는 사실처럼 있는 꿈이니까 그런 줄 알고 설법도 하고 중생제도도 하라. 이렇게 해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했지만 실로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사람이 없다고 보는 그것이 마음을 항복 받는 법(降伏其心)이라고 하신 것이고 금강경이 전부 보살행 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