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原 文 : 佛告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昔在然燈佛所 於法 有所得不 不也 世尊 如來 在燃燈佛所 於法 實無所得

如明 2015. 11. 30. 03:19

原 文 : 佛告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昔在然燈佛所 於法 有所得不 不也 世尊 如來 在燃燈佛所 於法 實無所得

[解 義]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또 같은 뜻을 물으십니다. 『여래께서 아득한 과거세(過去世)에 연등부처님 앞에서 교화를 받고 보리심을 일으켰는데 그때에 내가 어떤 법을 얻은 바가 있었느냐, 견성(見性)을 해서 깨달은 법이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수보리존자는 부처님께 여쭙니다. 『아니옵니다. 부처님, 여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법을 얻었다는 것은 말뿐이지 실제로 아무것도 얻으신 법이 없습니다. 얻을 수 있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법은 없사옵니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범부가 보기에는 석가여래께서 모든 것을 새로 깨달았으니 그것은 얻은 법입니다. 인생이란 밥먹고 똥싸다 죽는 것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부처님을 만나서 「확실히 내가 죽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우주의 본 바탕이요, 절대자유(絶對自由)의 존재로구나, 완전하고 영원불멸(永遠不滅)하는 존재로구나」하는 것을 부처님 설법(說法) 듣고 믿게 되었고 과연 그렇겠구나하는 도리를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내가 연등불(燃燈佛) 처소에서 발심(發心)을 해가지고 그 후부터 열심히 수도를 하고 난행고행(亂行苦行)을 하고 보살행(菩薩行)을 닦아서 오늘날 성불(成佛)했노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뒤 40년동안 항상 이렇게 설법하셨는데, 40년이 지난 지금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시면서는 시치미를 떼고 「여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법을 얻음이 있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근본자체는 견성(見性)하기 전이나 그 뒤나 항상 마찬가지이고 부처님 만나 볼 때나 안 만나 볼 때나 그 자체는 아무런 증감(增減)도 없어서 지옥(地獄)에 가 있을 때나 굼벵이 버러지로 있을 때나 그 자리는 여여(如如)한 자리로서 아무도 엿볼 수 없고 주고받을 수도 없고 깨칠 수도 없고 미할 수도 없는 자리이지만 중생은 그런 줄을 모르기 때문에 지도자(指導者)를 만나서 그 법을 의지하지 않으면 믿을 수도 없게 되고 깨달을 수도 없게 됩니다.

연등부처님께서 설사 이리해라 저리해라 하셨다 하더라도 석가모니 자신이 자기 마음을 자기 자신이 닦아서 깨달았지 연등부처님으로부터 어떤 법을 가지고 와서 닦은 것은 아니며 애당초부터 없던 것을 연등부처님한테 비로서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불(成佛)을 다 마치기 전 까지는 연등부처님의 가르침을 버려서도 안 되고 마음에 기억을 해서 잘 간직해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공부를 하는데도 마음에 의지하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을 세워 가지고 염불(念佛)이나 참선(參禪)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도 과거에 아무데도 의지하지 않고 성불을 하신 것은 아니므로 얻은 것이 전혀 없다고는 못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내가 연등불한테 아무것도 얻은 법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겉으로 봐서는 거짓말한 것과 한가지입니다. 확실히 연등부처님을 의지해서 발심했고 그 지도에 의지해서 성불하신 것인데 「얻은 것이 없다(無所得)」고 하심은 마치 제자가 스승을 배신(背信)하여 전부 「나 혼자 배웠지, 아무한테도 배우지 않았다.」고 하는 것처럼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께서 「안 될 말씀이십니다. 연등부처님 앞에서 깊은 것이나 얕은 것이나 참된 법이나 거짓된 법이나 얻은 바가 조금도 없습니다.」하셨고 부처님께서도 「너의 말이 옳다」고 긍정(肯定)하셨습니다. 체와 용이 둘이 아닌(體用不二) 본체 자리의 본래청정(本來淸淨)한 본바탕인 마음자리를 강조(强調)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 자체가 유무(有無)를 초월하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자리임을 알고 이제부터는 술이니 고기니 재산이니 가정·국가·민족이니 하는 일체의 집착·분별·망상을 초월하여 공부를 완전하게 마치기까지는 달리 한 번 해봐야 할 것입니다. 마치 장래를 위해서 부모의 슬하를 떠나서 조국과 가정을 버리고 먼 외국으로 유학(留學)가는 것과 같이 불교가 본래는 구세(救世)의 종교지만 내가 먼저 도(道)를 구하여 알 때까지는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산중수도(山中修道)하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본체로 봐서는 영원상주(永遠常住)의 존재니까 닦는다고 해도 안 되고 닦으려는 마음을 내면 벌써 때 묻히는 것이 됩니다. 깨달은 사람이 깨달았다 해도 안 되는데 더군다나 깨치지도 못한 사람이 이걸 닦는다면 그것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더 깨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범부로서 모순(矛盾)된 방법에 의해서 깨치는 길이 묘하게 있기 때문에 귀신도 모르게 지도하는 길이 있는 것을 나중에는 필경 알게 됩니다. 깨친다는 것도 기묘(奇妙)한 일이고 깨쳐 놓고 봐도 참 기묘한 거짓말 같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실상자리(實相), 마음자리를 봐서는 이렇다 저렇다가 다 끊어져서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고 배울 것도 가르칠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줄 것도 없지만, 범부로서 학문이니 과학이니 철학이니 유물(唯物)이니 유심(唯心)이니 하고 생각이 미치는 데까지 사상을 만들고 개념을 지어서 미혹(迷惑)되어 있다가 불법에 들어와서 상대세계(相對世界)의 생사법(生死法)을 초월해서 차차 도가 높아지면 마음의 터울이 단계적으로 굳어 올라갑니다. 그래서 1학년 2학년 구별이 있듯이 초지보살(初地菩薩)·이지보살(二地菩薩)하여 처음 깨달아서 부처가 되기까지 크게 나누어도 무려 52위(位)의 계층(階層)이 있는데 그것이 다 무엇에 의지해서 하긴 합니다. 깨달은 본체 자리에서 보면 계급이 있을 수 없고 닦을 것이 없지만 다겁(多劫)으로 오면서 지어 온 업습(業習)을 닦아 없애는 데 따라서 그런 계급이 생기게 되고 그것을 따라 점점 아는 것도 더 많아지고 신통(神通)이 늘어납니다. 이렇게 차츰차츰 닦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모두 다 무엇에 의지해서 배우고 닦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얻은 법이 없다고 하신 말씀은 이와 같은 보살인위(菩薩因位)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고 그것을 꿈속에서 거짓으로 있었던 일이고 실제로 실상으로는 없는 것이란 말씀이신 것입니다. 내가 본래 얻은 것이고 연등부처님 만나 뵙기 전부터 내게 본래 있던 것이므로 그것은 연등불한테 얻은 법이 아니니 그래서 소득(所得)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