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 文 :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解 義] 왜 그러냐 하면 어째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하면서 수보리존자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所以者何). 일체현성(一切賢聖)이란 곧 모든 불보살님들과 독성(獨聖)이나 나한님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깨달아 성인이 된 지위에 나아간 분들을 부처님과 보살님들이나 조사님, 나한님들이라 하며 이분들은 다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무위법(無爲法), 텅 빈 경지, 아무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다는 마음자리에 들어선 분들입니다(無爲法).
정말 마음의 본 자세에 들어가서 나와 남이 없고,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없고, 생노병사가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데, 그러나 이와 같이 하는 게 없는 법 거기에도 보면 초지(初地)보살·이지(二地)보살·삼지(三地)·십지(十地)보살도 있고 52위(位)의 보살경계를 넘어야 부처님께서 됩니다. 이 보살님들은 다 하는 것 없는데 들어가서 이렇게 등급(等級)이 있고 차별(差別)이 있습니다. 마치 서울대학에 입학했다 하면 1학년도 서울대학생이고 3학년, 4학년도 서울대학생이지만, 그러나 공부하는 내용을 보면 1학년, 4학년의 차이가 있고 대학원, 박사과정 이상의 더욱 깊은 내용을 공부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나 한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참선(參禪)을 해서 견성(見性)을 했다 해도 처음 깨친 초견성(初見性)을 가지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부터 무위법(無爲法)에 들어선 것이므로 비로소 깊은 공부를 하게 되고 보임(保任)을 하여 참 수행을 하게 됩니다. 그래야만 초지(初地)에서부터 52위의 보살경계(菩薩境界)를 닦아 올라가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무위법(無爲法)의 현성(賢聖)의 경계는 하는 것 없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닦는 것 없이 닦고 무심(無心)으로 하는 수행이어서 차별 없는 가운데 있는 차별이므로 중생세계의 분별심(分別心)으로 있는 차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별입니다(而有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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