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금강경

금강반야바라밀경 제 16,17,18

如明 2011. 3. 29. 09:15

 

제16 업장을 깨끗이 맑히다 [能淨業障分]

 

 

이곳에서의 맑힘은 깨끗하게 없애버림을 말함

 

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보잘것 없고 무가치한 것, 보잘것 없고 무가치한 것은 가장 먼저 버릴 것.  업에 얽매이면 안됨.  업이 본래 없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  이치를 모르면 모든 것 심지어 육바라밀도 업을 짓는 것이 될 수 있음. 공덕의 효과는 있음, 그러나 공덕이라는 것도 무상한 것임.

가라 앉혀서 맑아지는 것은 어느 순간이라도 휘저으면 다시 흐려질 뿐 진정으로 맑아진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업에 대해 이야기 해야했었던 이유는 부처님의 집안과 개인에게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석가족의 멸망, 제바달다등)들에 대한 해답을 내 주어야 했기 때문: 불교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해답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

 

 

" 또 수보리야, 선남자 ·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데도,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면, 이 사람은 전생(前生)의 죄업으로 반드시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 (今生) 에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함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곧 바로 소멸하고 반드시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되느니라.

 수보리야, 내가 기억해보니 과거 한량없는 아승지겁 전 연등(燃燈) 부처님 이전에 팔백 사천 만 억 나유타의 부처님(대승경전에서 극미진수, 무수히 많은 숫자의 부처님을 말하는데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전부 부처님으로 보는 정신, 대승불교에서는 상식과 같다,-- 참고로 무비스님은 그 것을 바탕으로 우선 모든 사람이라도 부처임을 실상으로 느끼자는 운동을 폄)을 만나 뵙고,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다 공양을 올리고, 받들어 섬겼느니라. 만약 다시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末世) 에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다면, 그가 얻은 공덕은 내가 전 많은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천 · 만 · 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어떤 산수와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 선여인이 이 다음 말세에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일고 외우는 이가 있으면, 그가 얻는 공덕을 내가 만약 다 갖추어 말한다면,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곧 미치고 어지러워져서 의심하며 믿지 아니할 것이다.

 수보리야, 반드시 알라, 이 경의 이치는 상상할 수가 없으며, 그 과보 (果報) 도 역시 상상할 수가 없느니라."

 

 

 

제 17, 철저히 아(我)가 없다 [究竟無我分]

 

 

여기서 我란 고정된 실체를 의미함, 구경무아.... 모든 것이 무아이다. 실체가 없다.

가족의 실체도 나라의 실체도 세계의 실체도 나아가서 내 몸의 실체도 심지어 모든 중생심의 실체도 없다. 하물며 명예와 권력과 재산과 이룬 모든 일도 실체가 없다.

큰 부자가 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부자가 되는 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버리는 것은 훨씬 더 수승하고 훨씬 더 부자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질로 보시하는 것보다 금강경을 수행하는 공덕이 훨씬 수승하다고 하는 것일까?  진리는 무상한 것이 아니기에........

 

 

그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머물며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선남자 ·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한다. "나는 반드시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하노라. 그리고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하였으나 한 중생도 실은 제도한 것이 없노라.'라고 하라. (모든 중생은 이미 모두 갖추어져있고 닦을 것도 더 보탤것도 없는 이미 완전무결한 존재이기 때문--그런 의미에서 중생이란 원래 없는 것)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상과 남이라는 상과 중생이라는 상과 수명에 대한 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랴면, 연등부처님께서는 결코 나에게 '그대는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를 이루고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라는 수기 (授記) 를 주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이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라고 하셨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이 여여 (如如) 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 여래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하더라도 수보리야, 실로 고정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최상의 깨달음은 여기에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無實無虛] .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일체법이 모두 다 불법 (佛法) 이다 [一切法 皆是佛法] .'라고 하느니라.(일체의 모든 것,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부터 시작하여 개인의 모든 작은 것까지 전부 무실무허로 이해해야한다 --이것이 中道의 원리, 원래 그러한 진리에 중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생긴 대로의 원리 대로 살지 못하고 욕심을 덧붙이므로 처처에 고통이요 처처에 상처이다.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불법대로 사는 것,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 그렇다고 일체법이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도 또 아님 그러므로 불법에도 집착하면 안됨, 그래서 위대하신 스승 부처님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불법도 버리라고 하셨다.)

 수보리야, 이른바 일체법이라는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일체법이니라.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이 아주 큰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아주 크다는 것도 곧 큰 몸이 아니고 그 이름이 큰 몸일 뿐입니다."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야 하나니, 만약 '나는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노라.'고 말한다면 이는 곧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이를 보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일체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다.'고 하느니라(보살이라는 그 자체도 여지없이 날려버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세상을 장엄하노라(나로인하여 세상이 빛난다).'라고 한다면 이는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무아 (無我) 의 이치를 통달하였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진정한 보살'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제18, 한 몸으로 동일하게 보다 [一體同觀分]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육안 (肉眼) 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육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천안 (天眼) 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천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혜안 (慧眼) 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혜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법안 (法眼) 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법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불안 (佛眼) 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불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항하강에 있는 모래에 대해서 여래가 말한 적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그 모래에 대해서 말씀하셨슴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컨대 저 하나의 항하강에 있는 모래들, 그 모래 수와 같이 많은 항하강이 또 있고, 그 모든 항하강의 전체 모래 수와 같은 세계가 있을 경우, 이러한 것을 참으로 많다고 하겠는가?"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많은 세계 가운데 있는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들을 여래는 모두 다 아느니라(앞의 다섯가지 안목을 완벽하게 가지셨으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내려다보고 낱낱이 다 알아 징벌한다는 타심통적인 안다는 의미가 아님: 마음의 속성, 실체를 안다는 것).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모든 마음은 다 마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찾을 수 없고(밝혀낼 수 없다. 손으로 잡을 수 없다, 이것이다 할 수 없다), 현재의 마음도 찾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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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글번역 여천무비(如天無比)

사경및 노트: 如明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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