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금강경

금강반야바라밀경 제 1,2,3,4,5,6

如明 2011. 3. 24. 19:34

 

  • 대승의 마음(툭 터진,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는 최상승의 마음을 발한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께서 설하신 經
  • 49년 설법
  • 1. 부처님께서 깨달음 이후 21동안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 '화엄경'을 21일간 설하심.- '궁자경악화엄시(窮子驚愕華嚴時)'
  • 2. '아함경(阿含經)'을 12년간 설하심.'제분정가아함시(除糞定價阿含時)'
  • 3. 방등부(方等部)의 경전 8년간 설하심 '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
  • 4. 반야부(般若部) 육백권의 경전 21년간 설하심.-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다 알게 된 경지-'영지보물반야시(令知寶物般若時)' (금강반야바라밀경 - 600부 반야경 속에 577권째 해당)
  • 5.법화부:부처님이 열반하시기까지 최후 8년간 설한 법화경: 전부가업법화시(傳付家業法華時)

 

      아함12, 방등8, 21재담반야, 종담법화 우8년,

      최초화엄 삼칠일

     궁자경악화엄시(窮子驚愕華嚴時),

     제분정가아함시(除糞定價阿含時) 

     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

     영지보물반야시(令知寶物般若時) 

     전부가업법화시(傳付家業法華時)

 

금강경의 대지(大旨) : 파이집현삼공(破二執現三空) :두 가지 집( 我執法執)을 깨뜨려 삼공( 三空):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을 나타내려는 것-- 내 인생이 空하고, 내인생 이외의 모든 세상이 다 空하고, 그리고 나와 세상이 함께 空하고,  이게 三空입니다.

 

  화엄경 대지는 통만법명일심(統萬法明一心)

  능엄경 대지는 기탁염발묘명(棄濁染發妙明)

  법화경 대지는 회삼승귀일승(會三乘歸一乘)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과 같은 지혜로 번뇌의 이 언덕에서 열반의 저언덕에 도달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 金剛:다이아몬드에 세가지 뜻이 있어요. 첫째는 견고하고, 둘째는 날카롭고, 셋째는 밝다는 뜻입니다. 이게 다 비유죠.
  • 세 가지의 반야: 실상반야(實相般若), 관조반야(觀照般若), 문자반야(文字般若)
  • 견고한 것은 실상반야(實相般若)고, 날카로운은 것은 관조반야(觀照般若)고, 밝은 것은 문자반야(文字般若)다
  • 반야가 반야를 읽는다.-- 진짜 반야는 마음에 있고, 경전은 마음의 반야가 지은 것이므로 경을 읽을 때는 마음에다 반조할 줄 알아야함.
  • 경전은 법신사리

 

 

제1. 법회가 열린 인연[法會因由分]

 

이와 같은 내용을 저(아난존자)는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舍衛國) 의 기수 (祇樹) 고독원 (給孤獨園) (기원정사) 에서 일천 이백 오십 명의 큰 스님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공양 (供養) 을 드실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 (袈裟) 를 입으시고 발우 (鉢盂) 를 들고 사위성 (城) 에 들어가서 걸식(乞食) 하셨습니다. 그 성안에서 차례대로 걸식하여 마치시고 본 곳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공양을 마치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  금강경에서의 차례대로 걸식, 자리를 펴고 앉음, 발을 씻음의 의미는 아주 각별함:
  •  걸식-- 무아의 경지 아집과 아상을 비움을 말함
  •  세족--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마음의 때를 씻어냄을 말함
  •  자리를 펴고 앉음 -- 몸과 마음이 온전히 앉음, 어떤 망상도 없이 철저히 앉음을 말함

 

제2. 선현(善現)이 법을 청하다 [善現起請分]

 

그 때 덕이 높으신 수보리 (須菩提) (공성을 가장 잘 이해하신 분) 존자 (尊者) 가 대중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옷차림을 바르게 정돈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끓고, 합장 공경하면서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시여, 여래(진리로써 늘 그러한 곳으로 부터 오신 분)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잘 당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이(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 불법을 알고자 하는 사람, 인생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싶어하고 인생을 좀더 보람있고 가치있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는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좋은 질문이다, 수보리야.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잘 당부(가르침의 의미)하느니라. 그대들은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선남자 ·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반드시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즐겁게 듣고자 하나이다."

 

 

제3 대승의 바른 종지 [大乘正宗分]

  •  불교의 가르침: 우리는 이미 모두 다 갖추어져 있으므로 그 본래의 위대함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있는 것을 누릴 줄 아는 방법을 가르침, 이미 있는 것에 눈돌리고 이미 있는 것의 가치를 제대로 찾아 누리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
  • 그런데 여기에는 正宗이라 했어요. 正宗. 가장 바르고 위대한 가르침 중에서 가장 바른 것, 그리고 으뜸인 것, 宗은 뭡니까? 宗은 용마루란 뜻이니까 한 건물, 한집의 가장 중심되고 으뜸되는 용마루를 뜻하는 宗자거든요. 우리가 종교, 종교 할 때도 가장 이 세상에 으뜸되는 가르침이라는 뜻(무비큰스님 말씀)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 지니라.

보살은 온갖 중생들의 종류인, 알에서 태어나는 것 · 태에서 태어나는 것 · 습기에서 생기는 것 · 변화하여 생기는 것(나비, 개구리, 매미등도 이곳에 해당) · 형상이 있는 것 · 형상이 없는 것 · 생각이 있는 것 · 생각이 없는 것 ·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은 것들을 모두 무여열반 (無餘涅槃) (견성, 성불) 에 들게 하여 제도 (濟度)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지만 실은 제도를 얻은 중생은 없느니라(본래 모두 다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원래 있는 것을 이끌어 주었을 뿐이므로 자랑할 바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 나'라는 상 · '남' 이라는 상 (相)  · '중생'이라는 상 · '수명'에 대한 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라."

 

 

 

 

 

  • 아상: 나라는 생각(자아의식)--가장 타파하기 어려움
  • 인상: 남이라는 생각(차별 구별의식)
  • 중생상; 나는 중생이라는 생각(열등의식, 자기 합리화, 나태한 마음, 자신의 불성을 이해하지 못함)
  • 수자상; 생명이 유한하다는 생각(한계의식, 우리 삶의 영원성을 이해하지 못합)

 

제4.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 [妙行無住分]

 

  •  멋진 행위---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몸도 마음도 머물지 않고 떠나는 것
  • 내가 한 일에 대해 상(相)을 내지 않음 -- 내가 보시하고도 보시했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 자기가 한 좋은 일에 집착하지 말 것을 말함. 상(相)은 생각(想)이 경화된 것. --보시를 행하는 자와 받는 자는 공덕이 서로 같음을 알면 상을 낼 것도 없다

"또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어떤 것에도 머물지 말고 보시(布施)

 

해야하나니, 이를테면 사물에 머물지 말고 보시할 것[부처님의 제자들에게 보시란 불법을 보시하는 것을 말함 보살(菩薩)이 어법(於法)에 응무소주(應無所住)하야 행어보시(行於布施)]이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온갖 것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하여 형상에 머물지 말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 (福德)

 

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쪽 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쪽 · 서쪽 · 북쪽과  네 간방과 위쪽과 아래쪽의 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 머뭄없이 머물다: 無住爲住

 

 

제5. 그러한 이치를 사실대로 보다 [如理實見分]

 

 

  •  교리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受想行識, 물질은 色, 色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육신을 중심으로 해서 內色, 外色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모든 물질을 다 色이라고 합니다. 모든 물질을 如理實見. 이치와 똑같이 실답게 봐야 된다. 우리는 대개 잘못 보는거죠. 잘못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사물을 제대로 잘 볼 줄 아는 전문가가 되면 척 보면 앎,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한 이유.  모든 사물의 공함과 불공을 함께 보는 중도(中道)로 볼 줄 알아야함 中道正見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육신으로써 여래 (如來)

 

를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육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육신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 (虛妄) 하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진리)보느니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모든 것, 모든 관계를  이미 깨어져 있는 것으로 보고 사용하라.
  • 금강경의 가르침은 예방주사와 같다.-- 삶의 어려움 앞에서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세상을 열심히 살되 다 텅 비었고, 이게 꿈이다, 이게 환영이다. 이렇게 알고 열심히 살 줄 아는것, 환영인지 알면서도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살면서도 환영으로 아는 것, 대개 모순된 것 같이 이야기 되지만은 아니 환영으로 알고 열심히 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지만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불보살들은, 깨달은 사람들은 존재의 실상을 전문적으로 보는 전문가의 안목을 갖춘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럼 세상을 실제하는 것으로 보았느냐 아닙니다. 실제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환영으로 보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게 이제 中道正見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中道라는 말도 많이 쓰고, 正見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정확하게 잘 알아야 돼요.

  내 자신도 그렇게 볼 줄 알고, 모든 존재를 中道正見으로 보아야 됩니다.

 

 제6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正信希有分]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을 듣거나, 글귀를 보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가 열반한 뒤, 최후의 오백 년경(투쟁(鬪爭)견고.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시시비비를 따지는 , 시시비비만 일삼는, 그런 투쟁만 하는 시대)에도 계(戒)를 받아 지니고 (福) 을 닦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이러한 글귀에 신심을 내고, 이러한 이치로써 진실을 삼으리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이나, 셋 · 넷 · 다섯 부처님에게만 선근 (善根) 을 심은 것이 아니다.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의 처소에서 여러 가지 선근을 심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글귀를 보고 한 생각이나마 청정 (淸淨) 한 믿음을 내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으리라는 것을 다 알고 다 보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들은 더 이상 나라는 상 (相) 이나, 남이라는 상이나, 중생이라는 상이나. 수명에 대한 상이 없느니라. 그리고 옳은 법 (法) 이라는 상도 없고 그른 법 (非法) 이라는 상도 없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들이 만약 마음에 어떤 상을 취하면, 곧 나와 남과 중생과 수명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만약 옳은 법이라는 상을 취하여도 나와 남과 중생과 수명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옳은 법을 취하지도 말고, 반드시 그른 법을 취하지도 말라.

이러한 이치에 근거한 까닭에 여래는 늘 말하기를, '그대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처럼 알라(부처님의 그 위대한 법도 땟목으로 여기라... 강을 건넜으면 땟목을 버리고 갈길을 가라.....땟목을 짊어 지고 돌아다니지 말라. 어떤 위대한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말라. 그러나 확실히 강을 건너야한다. 땟목을 타고 강을 왔다갔다 하다가 원점으로 돌아와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노라. 옳은 법도 오히려 반드시 벼려야 하거늘, 하물며 그른 법 (非法) 이겠는가?"

 

 

  •   처음 오백년은 해탈(解脫)견고 : 해탈하여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는 단계, 해탈하고 나서 산 속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님.
  •    그 다음 두 번째 오백년은 선정(禪定)견고 
  •    세 번째 오백년 다문(多聞)견고 해서  학문적으로 많이 발달한 그런 시기다 이런 표현이고,
  •   제4 오백년은 탑사(塔寺)견고 해서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탑이니, 사찰이니, 불교 미술품, 예술품, 조각품, 절의 외관 절의 분위기에 마음을 쓰는 단계 
  •   그 다음에 투쟁(鬪爭)견고.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시시비비를 따지는 , 시시비비만 일삼는, 그런 투쟁만 하는 시대다 
  • 위의 다섯가지 오백년은 불교를 대하는  불자들의 수준으로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반드시 추보적인 역사적인 오백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현재 한국불교는 방편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정법을 그르치고 땟목을 타고 왔다 갔다 하다가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을 왔다 갔다 하다가 원점으로 되돌아와 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출처: 한글번역 여천무비(如天無比)

     http:··cafe.daum.net·yumhwasil

노트: 如明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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