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마음이 시공을 창조

如明 2016. 5. 25. 08:27

마음이 시공을 창조

 

우리는 마음으로 꿈속에서 시간을 창조하여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서 아들 딸 낳고 그 아이 기르고 교육을 시킵니다. 유치원에서 국민학교로 중·고등학교에 보내느라고 가정교사를 대어 입학시험준비도 시키고 해서 교육을 마치고 나면 또 결혼을 시켜 가지고 슬하에 손자를 많이 두게 됩니다. 우리가 생시의 현실사회에서 한평생 산 그대로 꼭 생시와 똑같은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것처럼 꿈속에서 이렇게 한평생을 살았다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 시간이 움직이기도 전의 순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하튼 시간도 아닌 것을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고 하면 그 곳에도 공원이 있고 공장이 많았을 것이며 사회가 있고 우주가 있으니 이것은 무한대 공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한대 공간 이것은 참말 공간이냐 하면 그것도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이런 무한대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억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점을 가지고 무한대 공간을 본데 불과하고 자꾸 자꾸 이렇게 추구해서 따져 나가다 보면 점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무한대의 공간으로 창조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꿈이란 확실히 마음이 창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궁한 시간이나 무한대의 공간이 찰나도 점도 아니어서 말하자면 시간도 아니고 공간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간도 아닌 것 시간도 아닌 것을 물질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시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시간이라는 정의에 의해서 평소에 시간이란 물질계의 한 현상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랬고 무엇인가 움직인다고 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 공간이 현실적으로 존립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꿈에 시간이란 하나의 물질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꿈에는 공간도 아니고 시간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무궁한 세월이 흘러갔다고 생각하고 무한대의 공간이 벌어져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관념이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원리가 현실적으로도 존재하는가 하는 것을 한번 비유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가령 여기서 조그만 거울을 가지고 남산에 올라가서 시내를 비추어 보기로 합시다. 그러면 서대문에서 동대문·남대문·청량리까지 다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거울 속에 거울의 몇 억 만 배도 넘는 큰 서울의 질량이 그대로 변함없이 나타납니다. 사람만한 것은 사람만 하게 보이고 자동차만한 물건도 빌딩도 각각 자기의 크기 그대로 비춰져서 나타납니다. 또 거리도 1미터 떨어진 것, 100미터 떨어진 것, 1키로 2키로의 거리가 각각 조그만 차이도 없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거울에 나타난 서울은 한 개의 그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림이라고 하면 또 실제의 청량리가 거울 안에 들어와 똑같은 크기로 나타날 수는 없는 겁니다. 작은 손바닥만 한 렌즈 속에 큰 서울을 그대로 옮겨다 떼어 놓는다면 북악산이 깨알 만큼한 크기로 될 것이고 남산이 콩알만한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남산에 가서 거울을 비춰 보면 확실히 서울만한 질량이 그대로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착각하는 것입니다. 광학상(光學上)의 원리가 그렇다고 하지만 광학 자체도 결국 우리의 감각작용상 작은 것을 큰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보이느냐? 이유 없이 그렇게 보인다고 해야 합니다. 꼭 무슨 이유가 있다면 우리의 이 마음이 신기해서 신통으로 그렇게 작은 것을 크게 본다는 것입니다. 이 거울 반만한 작은 거울을 가지고 비추어 보더라도 역시 서울은 큰 거울과 똑같이 보이게 됩니다.

만약 이것을 더욱 작은 것으로 차츰차츰 더 줄여서 나중에는 사람들이 육안으로는 못 볼 정도의 작은 거울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비춰진 서울은 그 크기가 변함없이 그대로 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과학이 발달해서 산소나 수소나 원자처럼 작은 거울이 나타났다면 원자 크기의 거울 거기에도 역시 서울만한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작은 것까지 없어진 것 나중에는 작은 것이 없어진 것까지도 없어진 상태에 도달하면 우리 마음의 참 거울이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