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原 文 :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須菩提 所言法相者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

如明 2016. 5. 16. 20:07

原 文 :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須菩提 所言法相者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

 

[解 義]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이는 일체법에 대해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이 봐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이 믿고 가져서(信) 이와 같이 깨달아야(解) 할 것이며 그래서 「이런 것이 법이다. 저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것은 결정된 진리다.」하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른바 법이라는 생각은 곧 법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하나니 이런 것을 법상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깨달으라.」하셨는데, 여기서 「이와 같이」란 어떻게 알며 어떻게 보라는 뜻입니까? 이런 문제는 생사를 해결하는 문제이고 생명의 일체를 해결하는 근본 문제입니다. 선방(禪房)에 오래 다니면서 많이 얻어 듣고 입으로 흉내만 내는 사람을 구두선객(口頭禪客)이라 그럽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문답하는 것은 많이 배워서 열 마디 물으면 열 마디 다 대답할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생사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열반은 조금도 증득되지 않은 채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아는 것은 결국은 생사문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내가 처음부터 이것은 「반쪽 공부다, 한쪽 공부다.」한 것도 까닭이 있어서 한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끊는데 대한 말씀 참 잘 하셨다고 누가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이 부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이냐?』하고 물으시니 수보리존자 말씀이 『안 될 말씀이올시다. 그 사람은 부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말하는 사람이옵니다. 왜 그러냐 하오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고 하지만 그게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고 하면 말에 떨어진 것이오니 이것은 아상도 아니고 아상 아닌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고 하신 것이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옳게 알았다. 그렇게 보고 그렇게 알아라.』하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런 <여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말로만 배우다 보니 경계에 부딪치면 막히어 엎어지고 뒤집히고 허둥댑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꾸 이렇게 물으시고 저렇게 물으시는 것인데 수보리 존자는 번갯불처럼 밝고 빠른 지혜로 부처님 말씀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깨달은 이들끼리는 주먹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방망이질하고 하지만 다 그 경계에 맞는 짓을 하는지 미친 짓을 하는지 다 압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때는 「32상으로 부처님을 볼 수 있느냐?」하고 물으시면 「예, 부처님을 32상으로 뵐 수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가 다시 또 「참 부처님을 32상으로 뵐 수 없습니다.」하고 정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말이 다 맞는 말이지만 32상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32상으로 볼 수 없다는 말 보다 더 깊이 들어간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러면 32상이 여래냐?」 하시니까 수보리존자가 말을 바꾸어 가지고 「아닙니다. 뵈올 수 없습니다.」하고 이랬다 저랬다 말을 숨겼다 드러냈다 하며 번갯불처럼 왔다 갔다 하시지만 그게 다 꼭 꼭 들어맞는 조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소위 불법이라는 것이 곧 불법이 아니다(所謂佛法者 卽非佛法)」하셨다가 「일체법이 다 불법이다(一切法皆是佛法), 난로니 석탄이니 촛대니 경전이니 종이니 하는 이것이 다 불법이다.」 이렇게도 하셨다가 저렇게도 하시는데 그렇게 들으면 그 말이 옳고 저렇게 들으면 저 말이 옳고 그 조리만 따를 줄 알면 다 옳은 말씀이고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이와 같이 행하라.」 「이와 같이 신행하라.」의 <신>은 견성하기 전에 불법을 똑똑히 바로 아는 신심을 말하고 <해>는 견성하는 것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불생법상>(不生法相)하라는 것은 「이것이 결정된 불법이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떨어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일체중생이 즉비중생인데 그런 것을 중생이라 한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아닌 것을 네 가지 상이라 이름한다. 일합상(一合相)이라 하면 범부가 또 거기에 집착하고 그 말에 떨어지므로 일합상이 아닌데 범부들이 그것을 탐착한다. 그러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깨달아서 법상을 내지 말아라.」하신 것입니다.

결정된 법이 있다고 해도 <법상>이고, 결정된 법이 없다고 알아도 <법상>입니다. 결정한 법이 없는 줄 알면 없다고 결정된 것이므로 역시 법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번에 금강경 산림을 마치고 나서 「불법은 이런 것이다」하고 알고 있어도 안 되고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이 불법이구나.」해도 안 되고 아무것도 모르겠다해도 안됩니다. 법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법상을 내지 않는다고 하여 불법은 배울 것도 없고 경전도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참선만 하면 된다고 해도 그것이 법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