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如是 如來有佛眼

如明 2016. 3. 8. 08:13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如是 如來有佛眼

 

[解 義] 다섯가지 눈 가운데 마지막 눈인 부처님 눈(佛眼)에 대해서 물어보십니다.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냐? 여래께서 불안(佛眼)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안이 계시옵니다.』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눈, 곧 혜안·법안·천안·육안을 다 하나로 합한 것을 불안이라 합니다. 조각 조각이 아니고 마음이 하나이면서 그렇게 차별이 있습니다. 만법을 다 차별로 알고 차별 아닌 것도 다 아는 근본 마음은 하나이지 눈이 여럿이 달린 것은 아닙니다. 육안이 불안이고 법안이고 혜안이고 천안이지 육안은 고깃덩어리고 흙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게 홀로 어떻게 무엇을 봅니까? 그러니 모두 부처님께서 되어 놓으면 육안·천안·법안·혜안·불안의 5안을 다 갖춥니다. 천당 사람들의 천안도 자기 공부한 만큼 그 한계만 보이고 그 이상은 못 봅니다. 그래서 천당에도 28천의 구별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신선이 돼도 정신통일해서 어느 정도 공부만 돼도 그렇고 정신통일한 사람도 그렇고 이 혜안, 법안이 다 있기는 있는데 그 능력이 얼마 안 됩니다.

부처님처럼 철저히 깨닫고 보면 우리가 과거에 잘못 생각했던 과학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심지어 불법도 팔만대장경까지도 배운 것 다 잊어버립니다. 평등청정한 자성이 본래면목(本來面目) 그대로 돌아가면 쓸데없는 망령을 낼 필요가 없고 기억할 것도 없고 그러니 자꾸 무심해 갑니다. 중생은 꽁해서 듣기 때문에 천만년 가도 안 됩니다. 꽁한 그것만 내버리면 영감이 옆에서 아무리 욕을 해도 「제욕 제 마음대로 실컷 하고 욕만 해서 시원치 않으면 마음껏 때리시오.」하고, 꽁한 것만 없으면 그만 만사태평입니다. 당장 그 자리에서 복 받고 집안이 조용하고 동네가 조용하고 세계가 평탄해집니다.

그러니 이 꽁해서 이 방정맞은 놈이 이것이 버릇이 되어 가지고 문제니 이걸 두드려 부숴야 합니다. 이 꽁한 생각이 나오거든 사정없이 쳐부숴서 이렇게 항복기심하는 것입니다. 이게 항복하는 방법이니 망상이 움직일 수 있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중이 남이 나를 욕한다고 얼굴을 붉히며 골을 내고, 신도들이 좀 잘해준다고 그게 내 신도라고 다른 절에 가지 말라 하고 남의 법문 소리 듣는다고 샘을 하고 그러면 그것은 중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렇게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는 것이며 승속 간에 이대로 번뇌망상을 다스려 나가야 올바른 신도가 되고 승려가 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제망중중(帝網重重)의 현상계가 있다고도 못하고 없다고도 못하고 하나라 해도 안 되고 여럿이라 해도 안 되고 그런데 이런 제망중중의 촛대요, 시계요, 종이요, 목침이요 이런 것을 낱낱이 아시는 것이 육안이요, 법안이요 그런데 이게 혜안이요, 사실은 모두 불안 하나입니다. 우리 중생도 불안이 있어서 실제로는 마음 자신이 직접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불안이 있느냐?』하시니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안이 있으십니다.』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