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나존자의 인욕
설법제일(說法제일)인 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께서 체험하신 거룩한 인욕의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부루나 존자는 마음에 움직임이 없이 전부 참는다는 것입니다. 또 이 세상의 허무 함을 여실히 깨닫고 중될 사람 중 되어 철저히 수행하도록 하고 신도될 사람 있으면 특별한 신도가 되도록 설법을 제일 잘 하는 분입니다. 십대제자가 다 대아라한(大阿羅漢)이고 다 성인이시지만 수보리존자는 아공·법공·구공의 원리를 제일 잘 깨달은 해공제일(解空第一)이고 계를 잘 지키는 분이 우바리존자(優婆離尊者)시고 이렇게 각각 특별히 잘하는 분이 열입니다. 부루나 존자께서는 한 번은 아직 불교가 전도되지 외딴 지방에 가서 포교할 생각을 냈습니다. 그때는 일거일동(一擧一動)을 부처님께 반드시 다 여쭈고 실천했습니다. 부처님 곁을 떠나는 것을 어린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한테 하듯 지금 국민학교 학생이 선생님한테 하듯이 그랬습니다. 그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지금도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선생이 있으면 제자로서 그래야 할 것이고, 부모가 있으면 아들 딸이 꼭 물어서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제자가 스승보다 났다 하더라도 스승은 선각자(先覺者)이니 물어서 해야 하고, 부모가 설사 대학을 못 나오고 아들만 못하다 하더라도 나보다 경험이 많은 분이니까 상의하고 물어서 하면 부자간(父子間)이고 내외간이고 그 사이가 서로 이해하게 되고 달라 질 겁니다. 또 동네 노인들한테도 그래야 할 겁니다. 아무리 무식하고 농사만 짓고 있더라도 그래도 내가 평생 못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니 공경해야 합니다. 사람이 겸손해야 하고 그만큼 얌전해야 하고 틀림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아무 지방으로 가서 전도를 하고 싶은데 가도 되겠습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기는 가거라 마는, 그 지방 사람들이 불법이 없고 아주 강강난폭(剛剛亂暴)한 탐재호색(貪財好色)하는 중생들만 사는 곳이니 요새 말로 깡패 투성이의 우범지대(虞犯地帶)인데 거기 가서 전도하기 힘들 것이다. 만일 네가 가서 피땀 흘려서 아는 것, 공부한 것, 애써서 일러 주지만 한 사람도 잘 들어서 받들지 안하고 도리어 무슨 미친 소리인지 개 같은 소리 자꾸 하고 돌아다닌다고 하나도 네 말 듣지 안하고 비방만 하면 어찌할테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래도 대단히 어질고 착한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듣고 안 듣고 간에 전도를 계속하겠습니다.」 「그러면 욕만 하면 다행인데 봉변을 하고 몽둥이로 매질을 당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대단히 착하고 어진 중생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 사람을 때리고 돌질하고 병신 만들어 놓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어질고 착한 중생이냐? 억지로 지어서 하는 소리 아니냐?」 「아니 올시다.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 하오면, 나에게 달려 들어 죽이는 것보다는 어질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 겠다. 그러면 그만 달려 들어서 사정없이 머리에 돌멩이질을 해서 죽게 하면 어찌할 것이냐?」
십대 제자 가운데 실제로 이렇게 포교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은 이도 있습니다. 신통이 제일가는 목련존자가 그랬습니다. 태산도 뚫고 들어가고 바위 속에도 뚫고 들어가는 신통이 있는 이가 돌맹이에 맞아 죽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사실은 바윗돌로 때려 봐도 허공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 때리는 것 같아서 아무렇지도 않을 건데 그렇지만 맞아 죽는 법이 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가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루나 존자는 「그래도 어질고 착한 중생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사람을 죽인 중생을 어째서 어질고 착한 중생이라 하느냐?」 「부처님, 저희들이 억겁다생(億劫多生)으로 이 생사고해(生死苦海)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그때그때 받아서 태어난 육신(肉身) 이것을 가지고 항상 <나>라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중생이 이 생사를 못 면합니다. 그래서 중생이 죄업(罪業)을 제가 일부러 지어서 만들어 가지고 제 죄 제가 받는 것이지 누가 어디 다른 사람이 하겠습니까, 그 죄의 원인은 단지 허망한 육신을 애착(愛着)하는 이것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생사고해를 허덕이는 것이오며 아무 까닭도 이유도 없는 고생의 대가(代價)도 없는 고통뿐입니다. 그런데 이 육신을 그만 두드려 깨 부셔서 해탈시켜 저의 법신(法身)·참나·진아(眞我)를 드러나게 해 주니 그것이 어질고 착한 대보살이고 부처님 행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참으로 감사하고 어질고 착한 부처님이라 믿고 아무 원한이 없겠습니다.」 그때에야 부처님께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면서 「그래, 네가 전도할 자격이 있다.」고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법사(法師)라면 자신부터가 이만한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각오부터 먼저 하고 그리해야 할 이유부터 이론으로 철저히 따져서 알고, 그런 다음에 오늘 실천을 못했지만은 내일은 기어코 실천하리라 결심하고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부처님께서 전도하러 가라는 허가의 말씀을 안 하십니다. 네가 전도가 뭐야, 너도 안 배운 주제에 설법이 뭐냐고 그렇게 걱정을 하실 건데 부루나존자는 설법제일부루나(說法第一富樓那尊者)라고 아는 것도 많고 설법도 잘 하지마는 사실 설법할 자격이 되어 있고 참 머리 깍을만 했고 먹물 옷 입을만한 분이 되었습니다.
인욕을 하여 이렇게 까지 들어서면 적이 없습니다. 나를 죽이는 사람도 적이 아니요, 살리는 사람도 은인(恩人)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해롭게 하고 괴로움을 주는 사람한테 원한(怨恨)을 품지 않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기가 막히게 죽자하고 그야말로 나를 숭배(崇拜)하고 나를 따르고 온갖 것 갖다 대접하고 그게 생명을 바쳐서 나를 위하려고 하고 나를 따르는 그런 이를 고맙게 안 생각하는 것이 맞아 죽어 가면서 원망 안하기 보다 참 어렵습니다. 날마다 황금을 한 말씩 갖다 주고 불사(佛事)에 보태쓰고 용돈 쓰라고 매일 그렇게 하는 신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거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가 보다 하고 그렇게 생각할 것도 없는 겁니다. 누가 가져 왔는지도 몰라야지 사실 또 어디 가져온 사람 있습니까? 가져온 사람 있다고 생각해야 옳겠습니까? 그러면 비보살(非菩薩)이지 보살이 아닙니다.
조건부로 이렇게 저렇게 세상을 사니까, 이 세상이 이렇게 혼란해서 도무지 살 수가 없지 앞으로는 우리가 무주상세계(無住相世界)가 될 겁니다. 그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이름을 고쳐서 무주상세계(無住相世界)라 그럴 겁니다. 이번 금강경 산림이 끝나면 우리가 금강경 부대(金剛經部隊)를 조직해 가지고 무주상세계로 개조(改造)하는 역군이 되고 독립군이 되어야 할 겁니다. 이렇게 배우는 것이 인간을 개조하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렇게 되어야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수 있겠다고 꿈에라도 안심할 수 있을 겁니다. 아까 부루나존자처럼 그렇게 굉장한 인욕일지라도 그런게 인욕이 아니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욕이 아닌데 그러나 억지로라도 하기는 해야 합니다. 참아야겠다. 참아야겠다. 이러며는 머리 끝까지 골이 올라와서 당장 때려 죽일 놈인데 그래도 「참아라, 참아라, 그래도 참아야지.」이렇게 하다보면 도인(道人)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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