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견성이 제일바라밀이 아니다.
이광수 선생이 법화경(法華經)을 번역한다고 해서 어떤 스님이 크게 걱정하며 나에게 가보라고 하여 겪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때는 이광수 선생이 불교를 안 믿고 예배당에 다닐 시절인데, 그 분이 법화경을 보고 글이 좋고 내용이 매우 이상적으로 기록돼 있어서 소설적으로 불교를 보았을 뿐, 경문 그대로를 다 진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적입니다. 그러면서 그이가 세계 종교서적 가운데 완전한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법화경이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세존께서 49년 동안 설명하신 것을 총합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완비해 놓은 부사의한 경인데 춘원(春園)으로서는 소설적으로 들으면 구수하니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 청년이 예술적으로만 보는 그런 소견으로 법화경을 번역해 놓으면 그 사람의 솜씨나 권위 때문에 좀처럼 다른 사람이 손을 대 봐야 잘 안될 터인데 이 한국 불교는 그만 망치고 말 것이니 내가 춘원을 찾아가서 설교를 해 가지고 불교 신도가 되도록 한 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나와 춘원선생은 전부터 인연이 있어서 서로 안면(顔面)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춘원이 자하문(紫霞門) 밖에 집을 짓고 있을 때 입니다. 그 옆에 소림사(少林寺)에 춘원선생이 돈을 내가지고 나를 있게 하면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한 번 토의 해 보자는 것입니다. 아침만 먹고 내려오면 깔 것 하나씩 들고 산이나 개울가에 앉아서 얘기하다가 둘이서 점심때가 되면 올라가서 점심 먹고 또 개울이나 산이나 아무데나 가마니 하나 깔고 누워서 얘기하고 앉아서 얘기하고 이렇게 해서 나흘 동안까지는 자기는 자기 얘기하고 나는 내 얘기 하고 공산주의하고 자본주의 하고 유엔총회하듯이 그랬습니다. 이렇게 나흘이 되니 내가 한 쪽으로 슬그머니 분한 마음도 일어나고 또 한 쪽으로 내 부족을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닷새가 되는 날까지 얘기를 하니까 춘원선생 얘기는 다 끝이 났습니다. 그런 뒤에 내가 이렇게 저렇게 주장을 하면 말이 안 된다고 질문을 하고 그러면 나는 대답하고 해서 하루 종일 얘기하고 밤새도록 얘기해서 엿새 이레까지 됐습니다.
그 때 마침 내가 법화경 육신통(六神通)을 말했는데 사람이 어떻게 육신통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경 가운데 이상한 것 불교에서 말한 일체 부사의한 얘기는 낱낱이 묻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중에는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고 불경을 보는 태도가 전에 보던 것과 지금과는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예술시(藝術視)했고 소설시(小說視)했으며 신화시(神話視)했는데, 이제는 글자 한 자만 빼도 안 되는 내용이며 그것이 다 온전한 참말이고 진실한 과학의 소리·철학의 소리며 완전한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라도 잘못 됐다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말하라.」하니까 「이제는 없다. 사실로 다 인정을 하겠다.」 이렇게 됐습니다.
심지어 조선 독립문제까지 불교적으로 나오고 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을 가지고 자기가 주장했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사람의 근성(根性)을 가르쳐서 우리가 바르게 살도록 해야지 오백년 동안 나쁜 습성(習性)이 있어서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이니 일본이 차지 안했다면 소련이 차지했든지 중국이 차지했든지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온 국민이 다 잘 살 수 있도록 복을 지어야 나라 운수가 왕성해져서 백전백승(百戰百勝)하게 됩니다. 이런 인과의 원리를 쭉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과연 그렇겠다고 민족의 잘못된 관념을 먼저 개조해야 한다는 데 합치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법화경을 펴 놓고 품품(品品)마다 평소에도 한 번만 보면 안 잊어버리는 기억력(記憶力)인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물어보면 설명을 하고 해서 법화경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의심없이 경문(經文) 그대로 다 신해(信解)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깐 앉아서 둘이 얘기하는데 몇 천만년이 지나갔다는 그런 소리 저런 소리 시공(時空)이 모두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된다는 얘기, 불교의 인과설(因果說) 십계 이백계를 꼭 지켜야 하는 까닭을 모두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만 법화경을 이렇게만 읽어 가지고 번역하지 마시오. 아직도 법화경 읽어 볼 때마다 모르는 게 또 나타날겁니다.」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가「제일바라밀이 곧 제일바라밀이 아닌 이것을 제일바라밀이라 한다」는 내용을 앞에서 백 번도 더 했고 오늘도 종일 내가 그 얘기를 했지만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각경(圓覺經) . 능엄경을 읽어 보라 했습니다.
원각경(圓覺經)은 상하(上下) 두 권으로 금강경의 몇 배나 될 겁니다. 그래서 원각경을 읽어 보고 법화경을 읽어 보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한 3년 후에 만났는데 원각경을 읽어 보고 또 새로 법화경을 읽어보니 법화경에 대해서 정말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꾸 읽어 볼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전에 알았던 게 뭐라고 어떻게 알았었는지, 전에 알았던 생각도 다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때부터 불교의 독신자(篤信者)가 된 셈입니다. 한국 불교인으로 춘원 이 한분이 청년 남녀에게 불교 포교한 것이 대처승(帶妻僧) 7천명이 한 것보다 몇 10배나 더 됐습니다. 내가 그때 해방 전에도 그런 소리를 대처승에게 늘 했습니다. 그 뒤에 자기가 참선(參禪)도 하고 진실한 불자가 되고 철두철미한 민족주의자(民族主義者)가 되었습니다.
이 춘원의 경우처럼 이 구공소식(俱空消息) .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도 알 듯 하면서 자세히 보면 아직 덜 알았고 또 이것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니 아는 것으로 알 수도 없습니다. 또 설사 깨달았다 그래서 초견성(初見性)쯤 했더라도 제일바라밀을 다 안 것은 아니며 응무소주(應無所住)해서 이생기심(而生其心)하는 보임행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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