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제二의 가아(假我)

如明 2015. 8. 4. 08:14

제二의 가아(假我)

<나>라는 이것이 한 개의 생각이라면 나라는 생각도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라는 생각을 내는 본체(本體)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는 생각도 아니고 <나>라는 생각을 내기 전부터 <나>라는 말입니다. 생각을 낸 주체(主體)인 <나>는 <나>라는 생각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글자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아무 생각도 아닌 이것이 <나>라는 생각을 냈다면 <나>라는 생각은 제2의 가아(假我)입니다. 거짓 <나>이기 때문인데 그러나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것이므로 이것을 <우주의 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이 한 생각 때문에 전체가 다 생긴다. 생각의 나, 육체의 나 . 우주 현상계의 이 모든 것이 가아인 한 개의 생각으로부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 이것은 제1의 진아(眞我)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나>라는 생각을 낼 수는 있지만 <나>라는 생각은 아니니까 이것은 진짜 자기입니다. 모든 망아(忘我), 가아를 건설하기 전에 가아를 건설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에 진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물질도 허공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 이전에, 진아(眞我) 이전에 그 무엇도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런 진리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진리란 이름을 지으면 그것은 벌써 생각 뒤가 되고 하느님이다, 부처님께서다, 해봤자 다 생각 이후가 되는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아 이것은 현상이 아닙니다. 빈 것도 진공조차도 아닙니다. 진공도 산소도 공기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 진공인데 그것이 진아(眞我)일 수 없습니다. 진공은 아무 생명이 없는 것이고 <진아>인 <나>는 살아 있으면서 아무 것도 아니어서 진공조차도 초월한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것조차도 아닙니다. 유무(有無)를 다 초월한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이것 오직 살아서 말하고 듣고 있는 이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환인(桓因)·하느님·일본의 가미사마·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느님·인도의 옥황상제(玉皇上帝)·중국의 천(天)등등 나라마다 자기네 민족고유의 신앙대상(信仰對象)이라고 하는 신(神)이 있지만 이것들이 모두 <진아> 밑에서 나온 것입니다. 종교도 그렇고 정치·과학·사상이 전부 생각 뒤이고 생각 이하에서 벌어진 것이 모든 학문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학문 이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언가”하는 것을 찾자는 것입니다. “살아도 내가 살아야 하고 또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느냐?” 이것을 밝히는 것이 불교입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입고 자고 늙고 병들어 죽는 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육체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입니다. 가령 어느 사람이 백 년의 명을 타고 났다면 오늘 하루를 살았다 하는 것은 24시간 목숨을 짤라 버렸다는 뜻이 됩니다. 산삼 하나를 달여서 쭉 들이마시는 그 시간도 자꾸 죽어 가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워서 자는 것도 죽어 가는 것이고 오면서 죽어가고 가면서 죽어가고 사는 것이 다 죽어가는 것뿐입니다. 아무 사정도 없이 만분의 일초도 정지함이 없이 자꾸 가는 겁니다. 그러니 살아간다는 소리는 죽어간다 소립니다. 농사를 뼈가 빠지도록 지어도 자꾸 가는 것이고 장사를 해서 한국 돈을 다 모아 놓아도 그것도 자꾸 가는 것이니 하루하루 백원, 백원, 돈을 모으는 것이 가는 것일 뿐 아무것도 남는 것은 없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지만 빈손도 갖고 가지 못하고 통째로 다 버리고, 내버릴 것도 없이 갑니다. 차라리 본래 죽어간다고 말이나 바로 했더라면 그렇게 각오(覺悟)라도 하고 사니까 죽어도 섭섭한 마음이 덜했을 터인데 살아간다고 해놓으니까 별수 없이 시집가고 장가가려고 죽기 살기로 애를 써서 시집·장가가고 첫날 저녁부터 서로 맞지 않아서 속고 마는 겁니다. 아무 것도 없는 파초 껍데기 벗기는 것과 한가지입니다. 살아 봤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살았다는 우리나라의 어원도 옳은 이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 하는 소리는 곧 태워간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살았다 하는 말은 오늘 하루 태웠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죽어간다는 소리와 같은 뜻입니다. 한국 사람의 말은 진리에 꼭 맞는 말이 많습니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그리고 종교적입니다. 그러니 이런 이치를 생각하면 자살(自殺)할 마음이 안 날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청소년들이 전부 히피족으로 돼 가고 미쳐서 날 뛰는 것도 까닭이 깊은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개·돼지처럼 살면 백년 살아도 지루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도 먹고 똥 싸고 늙고 병들고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살 수 있겠지만, 본래의 인간은 삶의 가치를 찾으려 하고 동물과는 다릅니다.

현재 서양의 물질문명이 진보하여 가다가 마침내 벽에 부딪쳐서 이제 더 찾을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청년들이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전부 히피족이 되는 것인데 히피란 환장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머리는 뒤집혔고 알맹이는 없는 거품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는 지를 발견 할 수 없고 자기를 발견 할 수 없으니 히피족이 안되고 어떻게 합니까? 히피족이라도 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고 히피족도 못되는 것은 비 맞은 쇠똥 한가지의 썩은 청년들입니다. 비 맞은 쇠똥은 거름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히피족도 못되는 그것은 개만도 못합니다. 개는 보신탕이라도 하지마는 히피족도 안 되는 인간은 곰탕도 못 됩니다. 그러니까 세월이 그 만큼 밝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청년들은 무언가 생명의 애착이 있어 환각제(幻覺劑)를 먹을지 언정 자살은 하지 않습니다. 죽기는 뭔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덴마크 청년들은 미국사람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교육도 완전히 의무교육이고 교통도 무료·의료기관도 무료고 전부 공짜로 살 수 있는 극락세계고 지상천국(地上天國)입니다. 성(性)도 개방(開放)을 해서 여자로 생긴 것은 전부 친척이건 누구건 다 자기 마누라고 남자는 전부 영감이고 자기 남편입니다. 성을 개방해서 법률에 저촉되지 않도록 돼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놓고 나니 지극히 고독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성장하면 결혼해서 내 남편 내 아내가 결속(結束)되고 임자가 있어야 할 터 인데 개방을 해 놓고 나니 굴레벗은 망아지처럼 마음대로 뛰어다녀도 어디가 죽어도 아무도 간섭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덴마크 처녀 총각은 처녀 총각도 아니고 옛날 우리 습관(習慣)대로 하면 잡년, 잡놈들이 되어버려서 이 사람들은 삶에 염증(厭症)이 난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은 아직 삶에 대한 염증은 안 났기 때문에 생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습니다. 덴마크 청년들은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여러 백길 되는 데 막 떨어져 죽기까지도 합니다. 병들어 죽고 똥만 싸다 죽으면 남도 괴롭고 나도 괴롭고 할 텐데 통쾌한 처녀들 통쾌한 청년들이라 할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이상 무엇 때문에 병이 나서 죽도록 기다릴게 있느냐, 맹렬하게 한번 죽어 보자,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유물사상(唯物思想)이 찾아가는 생의 말로라 할 것입니다. 전쟁할 필요도 없지만 전쟁하고 싶으면 한번 해보자 이런 식으로 미국 히피족들 월남가서 싸우면 제일 잘 싸웁니다. 그것도 미친 히피족들의 행각(行脚)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걱정없이 싸우는 그것뿐이기 때문에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20세 이상 사람 다 죽고 나면 이 지구상은 뭐가 되고 인간세상은 뭐가 되겠나, 온 인류는 좌익이나 우익이나 이 걱정은 똑같습니다. 다행히 서양사람은 뒤 늦게나마 동양의 정신문화(精神文化)를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정신문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불교인데, 불타의 정법(正法)인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중국·한국·일본입니다. 그런데 또 중국은 공산당의 유물교육(唯物敎育)을 받고 있으니 불교는 없고 지금 한국과 일본만 남았는데 또 일본 불교는 학문적·형식적인 내용으로 전락했고 대승불교의 참 골수(骨髓)를 지니고 있는 것은 한국불교 뿐 입니다.

내가 이번에 일본에 가서 그 요지(要旨)를 밝혔습니다. 일본불교는 껍데기고 우리 한국불교는 알맹이라고 내가 그 증거를 댔더니 자기들도 긍정을 했습니다. 한국에 태어난 것을 가장 행복스럽게 생각하고 불교의 정신으로 언젠가 인류를 한번 지도할 때가 올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손으로 인류평화를 건설할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불교정화(佛敎淨化)한다고 근 20년 동안 애쓴 목적도 여기 있습니다. 비구 비구니가 잘 살아 보려고 절 뺏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약소민족(弱小民族)이 강대국(强大國)에 압제(壓制)를 당하는 36년간을 절실히 느껴 본 사람입니다. 독립만세(獨立萬歲)운동을 했다고 왜병(倭兵)에게 고생을 치르고 나서 헤매다가 마침 불교를 만나 중이 된 것입니다. “인류가 불교에 돌아오면 전쟁이 없어지고 약소민족들은 완전히 해방이 되어 영원한 독립을 얻을 수 있는 사상이 불교에 있다.”고 기뻐하며 불교에 귀의(歸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 사상을 바로 한다, 불교정화(佛敎淨化)한다는 말은 한국독립이요, 동시에 인류의 해방(解放)이다, 그래서 시간이 모자라면 내생에 또 와서 하자.” 이것이 우리의 뜻입니다. 실제로 죽어도 또 한국에 태어납니다. 이 좋은 이론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류평화를 위해 약소민족이 일어나는 횃불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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