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로키테스바라님, 능엄주를 하는 분들이 이런 문제로 한번쯤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저역시 이 문제를 여러번 부딪히면서 어떻게 하면 이 것을 현대인들에게 논리적으로 납득을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이 것은 능엄주뿐만이 아니라 모든 주문수행과 다른 수행에도 해당되는데, 읽어보시고 기독교인들에게도 납득이 되겠는지, 또한 기독교인들에게 보여주어 그들을 불교수행으로 안내를 할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지 언급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금강경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 금강경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 까지에는 시간이 걸리는 데, 처음단계에는 알든 모르든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그 카페에서 질문이 올라와서 올렸던 글인데, 마침 비슷한 질문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조금 덧붙입니다.
머리에 : 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또는 우리들의 삶의 경험상, 우리가 몸과 입과 뜻으로 반복한 것은 우리 마음에 저장이 되고 그 것이 무한히 반복되면 어떤 세력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 것을 업력이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8만 4천개의 업이 종자로서 형성되어 있을 터입니다. 유식학에서는 이들 종자들이 55개의 심리작용을 일으키며, 더 나아가 말로 행동으로 진전합니다.
이중에 선업의 종자는 밖의 인연을 만나서 선과를 가져오므로 즐겁고, 악업의 종자는 밖의 인연을 만나서 악과를 가져오므로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토대가 됩니다. 이 중에서 선의 종자는 키워가야 하겠고, 악의 종자는 소멸시켜가야 하겠지요. 이 것은 누구나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제같은 선승도 묵은 업은 녹여내야 한다고 했으니, 견성도인도 이 악업의 종자는 녹여내야 합니다.
능엄주를 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이 악업의 종자를 약화시키고 소멸시키는 과정이 됩니다. 아래에 "흡연욕"이라는 악업의 종자가 어떻게 소멸되는가를 보여서 내안에 있는 팔만사천의 악업의 종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소멸되는가를 사색해보셨으면 합니다. 흡연이라는 것이 "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건강을 해치고 수행에 있어서 도거등을 일으켜 방해가 되므로 악업의 종자라고 보고 글을 썼습니다.
제01
뜻도 모르고 금강경을 읽어도 수행이 되느냐고 한다. 미신적으로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이런 일은 경전을 넘어 주문수행에 들어가면 더 심해진다. 이런 점이 걸려서 수행에 들어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고 본다. 또한 실제로 이런 점에 걸려서 의심을 하여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런 분들을 위하여 보다 체계적인 설명을 위하여 이 글을 올립니다. (이론적 기초는 오온인 색수상행식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뜻을 모르고 금강경을 읽는다면 금강경 다라니를 하는 셈이 됩니다.
제02
뜻도 모르고 금강경을 하는 경우, 아예 뜻을 모르는 능엄주등 주문을 하는 것이 수행이 됩니다. 또한 업이 소멸됩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흡연을 예로 들어 설명하도록 한다.
제03
저는 19년간 흡연을 하다가 금연을 결심하고 끊은지 5년이 됩니다. 이제 담배를 보아도 또한 어떤 스트레스를 받아도 피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흡연의 업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약간 잔존해있는지 몰라도 전혀 욕구가 없으니 소멸한 것으로 보자)
제04
흡연의 업력이 얼마나 쌓였었을까? 한 개피의 담배를 필 때마다 1포인트의 습관력(즉 업력)이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19년간 13만 8700개피의 담배를 폈으니(하루 1갑) 금연을 결심했을 당시 13만 8700포인트의 업력이 축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05
금연 결심 후 5년이 지난 지금, 흡연의 욕구가 전혀 없으니, 그동안 13만 8700포인트의 업력이 소멸된 것이다. 어떻게 소멸된 것일까? 업력소멸의 비밀은 "욕구가 올라왔을 때, 절제하고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즉 욕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금강경식으로 이야기하면 '흡연의 욕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제06
금연 실행 후 지금까지 비록 담배를 피지 않았지만 줄기차게 흡연욕구는 올라왔다. 처음에는 하루 30~40번도 더 올라왔고, 지금은 몇 달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으므로 대략 2일에 한 번 흡연욕이 올라온 것으로 치면, 5년이 1825일이니 대략 912회의 흡연욕구가 올라왔었다고 볼 수 있다.
제07
결국 13만 8700포인트의 업력이 912회의 절제(無住)로 소멸된 것이다. 흡연욕구가 올라와서 참아내면 그 한번마다 152포인트의 업력이 소멸된 셈이다. (13만 8700포인트/912회)
제08
이렇게 보니 19년 업을 지었더라도 소멸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음을 알았다. 즉 5년만에 지은 업이 소멸된 것이다. 업력의 축적속도보다 소멸속도가 빠르니 얼마나 다행인가?
제09
정리 : 습관된 것이라도 욕구(색수상행식중 行)가 올라왔을 때, 절제를 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그만큼 업이 소멸된다
제10
뜻을 모르더라도 금강경을 읽는 경우 혹은 뜻을 모르면서 능엄주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한 시간 동안 정진을 한다면, 그 사이에 무수한 잡념(想)이 일어나며, 잡념은 금새 무엇인가를 하려는 욕구(行)로 발전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려는 욕구에 머물지 않고 금강경(능엄주)에만 집중한다. 그러면 어느 사이 그 욕구는 사라지고 만다. 이러는 과정에서 (예컨대) 152포인트씩의 업력이 소멸되는 것이다.
제11
무엇인가 다른 것을 하려는 욕구에는 아주 무수한 종류가 있다. 1. 지겨우니 그만두고 싶다. 2.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보고 싶다. 3. 텔레비전이나 보고 싶다. 4. 뭐 다른 훌륭한 것을 하고 싶다. 5. 게임광의 경우 게임을 하려는 경우 6. 그냥 누어 자고 싶다 등등
제12
금강경을 읽는 동안 계속 다른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 데, 이 것을 절제하고 계속 금강경을 읽는 가운데 업이 소멸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참선이든 염불이든 주력이든 간경이든 절이든 위빠사나이든 마찬가지이다. 뜻을 모르고 하는 금강경이 뜻을 아예 모르는 능엄주가 훌륭한 수행이 되는 이유이다. (경전의 내용에 남들보다 심하게 분별이 일어나는 분은 참선이나 주문으로 수행방편을 바꾸면 그런 분별로부터 해방된다. 이 것이 근기에 따른 수행이다.)
제13
금강경을 읽는 동안(1시간이라면) 대략 여러가지 욕구가 도합 50번이 올라왔다고 한다면, (흡연의 경우에 비추어) 대략 7600포인트의 업력이 소멸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0번의 욕구 x 152포인트) 우리는 살아가면서 업을 늘리든지 혹은 줄이든지 그 두가지를 합니다.
제14
이 것이 뜻도 모르고 금강경을 읽어도 무한한 공덕이 되는 이유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업력이 제8식에 잠자고 있는 상태에서는 소멸되거나 약화되지 않습니다. 금강경을 읽으니 혹은 능엄주를 하니 더 많은 잡념과 망상이 올라온다고 성가시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어나서 소멸되는 것이니 기뻐할 일이다.
제15
금강경을 읽거나 기타 다른 수행을 한 후 가뿐하게 느끼는 것은 이렇게 다소나마 업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제16
지은업이 소멸되는 것은 대략 네 가지로 정리될 듯 하다. 첫째 지은 업이 일정한 연을 만나서 그 업을 받는 경우.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과정을 거치며 그 가운데 새로운 업을 짓는다. 둘째 삼매에 들 경우 억겁의 업이 녹는다고 한다. 세째 삼매에 들지는 못하더라도 금강경이나 능엄주등으로 꾸준히 수행을 할 경우 (지금 설명하는 것) 네째 참회의 경우 (108참회, 기타 참회)
제17
참고로 꾸준히 지은 업은 꾸준히 올라오고, 격하게 지은 업은 격하게 올라오는 듯 합니다.
제18
뜻도 모르고 하는 금강경이 수행이 되는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더 수행에 매진을 하겠기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도 이렇게 정리된 글을 늘 경책삼아 보려고 합니다. 결국 금강경을 압축하면 "번뇌망상에 머무르지 말라"가 그 중요한 요점중의 하나가 되며, 더 줄이면 '방하착'이 된다. 번뇌망상에 머무르지 않는 방법의 하나가 금강경 독송이요 다른 하나는 능엄주이다. 다른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제19
그냥 금강경을 읽어도, 삼매에 들어도 무한한 업이 녹으니 열심히 합시다.
제20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업을 다 녹여내신 분이겠지요.
제21
수행중에 올라오는 번뇌망상과 욕구등을 1번 넘고 2번 넘는다. 1번 2번을 넘었는 데, 3번 4번을 못넘으랴. 아니 백번 천번 만번을 못넘으랴!
제22
수행외에는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는 업이 떠오르는 않는다. 잠복하여 외부의 연을 기다릴 뿐이다. 수행시 혹은 외부의 인연이 닿을 때 과거에 지은 업은 떠오른다. 다른 점은 수행시에는 업이 소멸되고 새로운 없이 생성되지 않지만, 외부연을 만났을 때에는 과거업은 소멸되지만 새로운 업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것은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이 과정을 똑같이 거치는 것이다.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는 업이 일주일에 한번 소위 '창조주'에게 회개한다고 하여 소멸시켜주지는 못한다. 기독교의 회개를 부러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 깊이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기도의 과정이 금강경 독송이나 기타 수행과 유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업이 소멸되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업이 소멸되고 수행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제23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미래에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는 악업을 짓지 않도록 경책하셨던 것입니다. "악행을 짓지 않으므로 악과의 고통에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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