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독, 10년 동안 10만 독송을 서원한 130여 ‘능엄 행자’. 성성한 화두를 든 것 같은 그네들의 주력 삼매 열기가 뜨겁다. |
서울에 사는 한 젊은 보살은 생애 첫 철야정진 참가를 위해 부산행을 주저 없이 결
정했다. 다음 카페 아비라 회원인 그는 다른 이들의 수행담을 접하며, 꽤 오랜 시간
능엄주 독송 수행을 해오던 차였다. 까다로운 능엄주가 입에 붙을 즈음에는 번잡했
던 일상이 간결해지고 스트레스만 받던 직장에서도 활기를 되찾은 그였기에 철야
정진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에 밤잠도 설쳤다.
온-오프라인서 130여명 동참
김해에 사는 초등학생 5학년 천진불은 어머니의 강요로 능엄주를 시작했지만 이제
는 달달 외울 정도로 능숙해졌다. 신기하게도 친구와 노는 것만큼 공부도 재미있어
졌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밤새 능엄주를 하는 절에 가보자고 했다. 어른들 틈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또래들도 많다는데 괜찮겠지. 그날 밤은 소풍 가기 전날 밤 늦
을까 걱정하며 설레는 밤 같았다.
부산 해운대에 살고 있는 노보살. 우연히 옥천사를 찾아간 이후부터 능엄주는 일상
이 됐다. 매일매일 고마움이 넘쳤다. 철야정진 날에는 100인분이 넘는 공양간 봉사
도 자처했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이 공양으로 에너지를 충전해서 정진에 몰입할
까.
1월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의 한 고개에 위치한 옥천사(주지 백졸)에는 전
국 각지에서 130여 명의 재가불자가 모였다. 이들은 사는 곳도 다르고, 성별도, 나
이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 사항이 있다. 능엄주를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외어 온
‘능엄 행자’라는 점이다. 이윽고 오후 5시가 되자 일제히 대불정능엄신주를 합송하
기 시작했다.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글자로 따지면 3천 1백여 자. 금강경 원문 절반에 버금가는 글자 수다. 산스크리트
어를 그대로 음역화해 한글로 옮긴 터라 초보자가 읽으면 10분이 넘는 다라니. 그
벅찬 주문을 이들은 달달 외운다. 게다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의
빠른 속도로 염송한다. 이곳의 1독 시간은 길어야 4분 30초, 빠르면 2분을 넘기지
않는다. 말 그대로 주력삼매인 것이다.
옥천사에 전국의 능엄 행자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5일부터다. 능엄주
수행도량으로 알려진 옥천사가 능엄선원 불사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능엄주 10
년 결사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희고 깔끔한 외벽에 소박하면서도 옹골찬 매
력이 느껴지는 불단, 옥천사 문화관 지하에 마련된 쌍둥이 선방 두 곳이 바로 능엄
선원이다.
능엄주 10년 결사는 매일 하루 능엄주 30독씩 10만독을 이어가는 대장정이다. 석
달마다 회향과 함께 입재를 하고,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는 철야 108독 정진을 이곳 능엄선원에서 갖는다. 참가자들은 옥천사 신도뿐만 아
니라 대부분 다음 카페의 아비라, 능엄선, 옥천사, 그리고 네이버 카페 아비라 등
온라인 카페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수행을 이어가는 네티즌들이다. 즉, 철야 108독
정진은 이들에게 매월 셋째 주 삼천배, 넷째 주 참선 정진과 함께 갖는 오프라인 모
임인 셈이다.
이날은 철야 능엄주 수행이 부산 정수사에서 출발한 이후 28회를 맞은 날인 동시
에, 옥천사 능엄선원으로 장소를 이전한 이후 일곱 번째 모임이자 2009년 새해 첫
모임이기도 했다. 능엄주 10년 결사의 원력 덕분일까. 지난해 7월 입재 당시 70여
명으로 시작한 이후 꾸준히 참가자들이 증가해 100명이 훌쩍 넘어섰다. 이제 선방
은 물론 복도와 지대방까지 빼곡하게 좌복을 펼치는 모습이 눈에 설지 않게됐다.
장문 외우며 화두 드는 힘 길러
그렇다면 이들은 그 많은 수행 가운데서 주력을, 그 많은 다라니 가운데서 왜 하필
능엄주를 읽고 외우는 것일까. 옥천사 주지 백졸 스님은 “전 조계종 종정 성철 스
님의 가르침 속에 그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화두 중에는 능엄주 화두가 제일 크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
시 기존 화두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바꾸지 않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능엄주
를 들고 보니 ‘바로 이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간경, 관세음보살 등 정진도
종류가 많습니다. 그런데 첨예하게 하려면 능엄주를 해야 됩니다. 그 긴 능엄주를
안 보고 다 연결하기 위해서는 잡념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3천 백여 자를 꿰고
정확하게 연결하는데 망상이 들어왔다 하면 끊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24
시간 깨어 있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렇게 해야 됩니다.”
화두만을 강조하고 주력을 하근기로 여기는 수행자, 주력을 마치 뇌 운동의 하나로
만 인식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일갈이었다. 옥천사 주지 백졸 스님은 초심자들을 위
해 능엄주 철야정진에 앞서 개별 면담의 시간을 갖고 일과수행, 이른 바 하루 절 몇
회, 능엄주 몇 독 등 매일 이어가야 할 수행목표를 과제로 제시한다. 또 구참자들을
위한 별도의 법문을 통해 점검의 시간도 갖는다.
철야 정진의 입재부터 회향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능엄 행자들을 위한 외호에 진력
하는 총무 정혜 스님도 능엄주의 장점을 덧붙였다. “장문의 능엄주를 읽고 또 외우
고, 수도 없이 반복하는 가운데 집중력은 크게 향상 되며, 능엄주 수행을 바탕으로
화두를 들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옥천사에서는 능엄주를 어린이 법회에서부터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으며,
매년 2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능엄주 암송
대회를 개최,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이 행사를 위해 옥천장학회가 결성돼 있고,
올해도 2월 22일 오전 9시 어김없이 16회째 암송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아비라 카페 운영자인 최정태(46, 덕도) 거사도 초심자들의 참여를 격려했다. 그는
“대중의 소리에 자극을 받아 능엄주를 반복하게 되면 개인적으로 할 때 보다 실력
이 부쩍 향상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함께 정진하면서 얻어 갈 수 있는 가치
이기에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주저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루 30독·10년 10만독 서원
전국 능엄 행자들의 새해 발원과 정진 원력을 모은 능엄주 108독 철야 정진. 밤을
꼴딱 새며 능엄주를 외우고 또 외운 이들은 다음 날인 1월 4일 오전 4시 108독 회
향과 함께 아침 예불을 올렸다. 그리고 공양을 마치자마자 동해의 일출을 보기 위
해 경북 포항으로 내달렸다. 호미곶의 쪽빛 바다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 능
엄 행자들은 환희로 가득찬 가슴에 품어냈다. 능엄주 10년 결사가 더 깊게 영그는
순간이었다. 2009년의 첫 철야정진은 이렇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회향됐다.
부처님의 정수리 광명으로부터 이루어진 미묘한 게송, 청정한 마음과 계행을 바탕
으로 지송하면 비록 중생이라도 세간의 모든 일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출세간의 지
혜를 성취하게 한다는 주문. 하지만 무엇보다 대불정능엄신주가 아름답고 가치 있
게 다가오는 것은 이 같은 무량한 공덕을 자신의 복으로 만들어 갈 줄 아는 ‘능엄주
10년 결사’의 능엄 행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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