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原 文 :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卽非善法 是名善法

如明 2016. 4. 5. 08:57

原 文 :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卽非善法 是名善法

 

[解 義] 『수보리야! 이른바 선법(善法)이라고 하는 것을 여래께서 선법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이름을 선법이라 할 뿐이니라. 내가 착하다고 하는 말은 착하다는 말이 아니니 그런 것을 착한 법이라 한 것이다.』 금강경을 배워서 외워 가지고 천독만독(千讀萬讀)하면 부처님의 이런 말씀이 알아집니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이 생사와 열반에 구애되지 않고 무심으로 중생을 위해서 선행을 하라. 배고픈 사람 밥도 주고 옷 없는 사람 옷도 주고 금강경의 사구게도 가르쳐 주고 하여 이렇게 착한 법을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성불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 착한 법이 곧 착한 일이 아니다 그런 말입니다. 착하다는 말은 악하다는 말의 상대어(相對語)인데 <응무소주>의 열반 해탈의 경지에서는 선악·시비·죄복이 있을 수 없는 자리 입니다.

중생들의 세계에서는 선악의 절대적인 기준도 세울 수 없습니다. 이해와 관념·사상·주의를 따라 여기서 선이던 것도 저쪽에서는 악으로 규정됩니다. 이와 같이 자기 본위로 하는 행동은 자기 생각으로 아무리 좋은 일을 하든 좋지 않은 일을 하든 사사건건이 악한 일이며 남을 위해서 봉사적으로 희생적으로 하는 보살행은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이 다 선행입니다. 그러므로 구공(俱空)의 자리에 들어가 보면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말도 그 절대적인 표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우주 천지의 모든 것이 큰 바람 한 번 만나면 꺼져 없어지는 물거품 같고 아침 이슬처럼 잠깐 동안 존재하는 초로인생(草露人生)인데 이런 것 저런 것이 얘기가 되지 않습니다. 구멍 뚫어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일체선법을 닦아라.」하신 말씀은 물거품 같고 이슬 같은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중생을 위해서 무조건 남을 위해서 살아라. 그것이 보살행이다. 「저러면 어떻게 되고 이러면 불리하겠다」하는 모든 것이 보살의 입장이나 불교를 참으로 아는 이가 보면 이 육신을 나라고 생각하던 도둑스런 생각, 원수스런 잘못된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