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 文 :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解 義]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의 온갖 마음을 다 아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부처님께선 말씀하십니다. 「일체 중생이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는 건 그건 생각이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그것을 곧 마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남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일반적인 논법으로는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부처가 되면 온갖 중생의 마음, 망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걸 보기도 하고 모양도 나타나고 냄새로도 알고 생각으로도 알고 마음으로도 알고 남김없이 다 아시는데, 그것은 왜 그렇게 알게 되느냐 하면 그게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있다.」고 하셨으니.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있다.」는 말씀의 조리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금강경을 천독 만독을 자꾸 하면 그 뜻이 풀어져서 이런데 걸리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온갖 생각이 아니라 물위에 떠 있는 파도나 한가지란 뜻입니다. 중생이 아무리 그 마음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멸(生滅)이 있어서 가령 「여기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게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껍데기 그림자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게 또 그런 사람이면서 그건 또 진실한 사람이란 말도 되고 부처란 말도 되고 그런 말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큰 적멸(寂滅)에 드시어 대열반(大涅槃)에 계시니까 다른 중생은 다 부처님의 대열반의 마음이 바다 위에 떠 있는 파도처럼 드러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며, 내 몸 위에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환히 알게 되고 보인다는 것입니다. 만일 중생이 한생각도 까딱 안하고 모두 성불해 가지고 중생제도도 하지 않은 채 모두 본연자세 그대로만 있으면 부처님도 그걸 볼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아니고 모양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니까 일체가 다 떨어진 자리를 불불(佛佛)이 서로 볼 수가 없는 자리입니다. 볼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은 벌써 어떤 형태의 존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진치의 생각에 얽매인 이 마음, 그것은 참 마음이 아니고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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