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 文 :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或有人聞 心卽狂亂 狐疑不信
[解 義]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저 말세에 사람들이 이 경전을 수지독송하고 또 이 경전을 수지독송한 공덕을 얻는 그걸 내가 만일 갖추어서 다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이 듣고 나면 마음이 미쳐서 혼란해 지고 미칠 것이다.』했습니다. 향적세계(香積世界)라는 불세계가 있는데 거기서는 말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시려면 향을 한 대 향로에 꽂아 놓으면 백년이고 천년이고 그 향내가 뻗혀 나갑니다. 그러면 그 불세계에 사는 중생들은 누구나 그 향내를 맡으면 그만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네 가지 진리를 깨쳐 버립니다.
「아 ! 이 세상이 다 고로구나. 이 세상이 다 허망한 것이 모여가지고 거짓 있는 것이고 흩어져 가는 도중에 있는 것이구나.」하고 곧 압니다. 그리고 그 부처님께서 주먹을 번쩍들어 보이면 그만 대중이 전부 다 깨달아 버립니다. 이건 말이 없는 불세계입니다.
이와 같이 향으로 하는데, 꽃으로 하는데, 또는 음식으로 하든지 그 교화 방법이 불세계마다 각각 다릅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이 사바세계는 교체(敎體)가 무엇이냐 하면 음성교체(音聲敎體) 곧 음성으로 가르치는 곳입니다. 문자만 가지고도 또 안되고 글로 된 경전이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꼭 혀를 놀려서 가르쳐야 빠릅니다. 글도 역시 혀의 표현이긴 합니다. 그래도 여기는 어디까지나 음성이 교체가 되어 있고 향적세계 같은 데는 향이 교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석천천당에 올라가면 굉장한 복력으로 저절로 생긴 궁전이 있습니다. 우리도 꿈에 가면 큰 도시가 있고 우리 집도 있고 그런 것이 생각으로 저절로 생겨 가지고 있는 것이며 누가 목수를 데려다 지은 것도 아니고 그렇듯이 제석천궁도 제석천의 복력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 궁전의 크기를 아주 줄이고 줄여서 우리 한국 땅덩이만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법당에도 바깥 천정에 비들기나 새들이 못들어가게 그물을 쳤는데 제석천궁은 새 똥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장엄으로 장식을 하느라고 진주·다이야몬드 같은 아주 좋은 보석으로만 그물을 칩니다. 그런데 이쪽 구슬이 저쪽 구슬에 비춰지고 하여 이 구슬끼리 전부 서로 통하여 비춰가지고 있으니 우리 한국만한 궁전이라고 한다면 그 구슬의 수가 몇 개나 되겠습니까? 그 많은 구슬이 한 구슬 속으로 그림자가 다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구슬 이것이 그 여러 억천만개나 되는 구슬의 그림자가 밑으로 보이고 동서남북으로 들어와 가지고 그 전체를 받아 가지고 그 옆에 구슬에 비추니까 이거는 전체가 하나고 하나가 전체로 보입니다. 이것을 받아 저쪽에 넘기고, 제 구슬의 것을 또 이쪽으로 넘기고, 저는 저대로 받아 있습니다. 제 그림자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 쪽을 비춰주고 또 저놈이 제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받고 이러면 복수(複數)로 자꾸 곱수로 됩니다. 이런 것이 한 시간만 되면 그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고 두 개 구슬로만 해도 무한의 수가 될 것인데 이것은 정말 아승지의 수자 보다 더 많습니다. 일백 스물 넉자라도 못 따라 갑니다. 이런데 그 구슬과 구슬 전체가 또 다 그러니 전체가 전체를 전부 포함한 그것이 여러 수 억만 불찰미진수 아승지 항하사 숫자 이런 게 모두 다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하고 제망중중(帝網重重)이라 합니다. 지금도 자꾸 그렇게 점점 비쳐 나갈 것이며 서로 반사가 될 것이니 그런 수를 누가 세겠습니까? 그렇지만 부처님은 그 제망 중중 구슬들을 서로 비쳐서 만년 아니라 몇 아승지 겁을 지나도 이 수를 다 아십니다.
부처님의 반야법문이 600권이라고 하지만 그 실제로는 미진수의 법문이 있다고 합니다. 21년간 말씀하신 것이 우리 인간만 듣는 게 아니라 천당 사바세계 할 것 없이 다 듣도록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 같은 말씀을 하셔도 여러 세계의 중생들이 각각 다 자기 말로 알아듣도록 하십니다. 이 금강경도 이제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다 되는데 상하 두 권이나 되는 것은 화엄경 같으면 하나만 물어도 몇 가지로 대답하시듯이 백 마디 물으면 천 가지가 나오고 만 가지가 나오고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게 부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떤 제자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 수가 모두 몇 권이나 되며 사실 그걸 다 펼쳐 놓으면 모두 얼마가 되겠습니까?」 물으니까 백억 세계를 두드려 무슨 미진수 전자수와 같이 많은 장수(張數)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중무진의 시방세계에서 불보살님까지 「저 사바세계의 석가여래께서 출세를 하셔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시느라고 마지막 법화경을 설하신단다, 금강경을 설하신단다.」 이래 가지고 막 모여옵니다. 그러니 허공이 가득차고 이러는데 또 제 몸을 포개고 또 그 보살이 보살을 포개가지고 중중으로 포개지만 하나도 머리가 안 아프고 밑에 깔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원융무애(圓融無碍) 원만하고 두루하고 그래서 서로 방해도 안 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그 희유한 경계를 상상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이런 희유한 도리를 다 설명하신다면 근기가 여간 높지 않아 가지고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호의(狐疑)라는 말을 여호 같은 의심이라고 하는데 이런 의심이 있는 사람은 성불 못합니다. 사람들이 여호를 찾겠다고 쇠고기나 돼지고기나 그 속에다가 무슨 폭발물 같은 것을 넣든지, 무슨 독약을 넣든지 하고는 겉으로 냄새를 피우지 않게끔 잘 밀봉해서 여우 다니는 데다 놔둡니다. 이놈이 무엇 주워 먹으러 다니다가 돼지고기가 한 뭉치 있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게 이런데 떨어질 수가 없는 건데 필연 무슨 조화가 붙어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들고 요리저리 벼른 뒤에 여기 좀 맡아 보고 저리 맡아 보고 하다가 아무래도 못 먹겠다 하여 그대로 놓아두고는 한 댓 발 간다는 겁니다. 가다가는 그 놈이 또 아까와서 냄새라도 맡아 보고 가야지 하고는 다시 되돌아와 보고 하기를 열번 백번 하다가 나중에는 할 수 없어 먹어 버립니다. 까불다가 탁 터져 죽는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먹고 나서 몇 시간 뒤에 그만 죽기도 하는데 어떤 놈은 기어코 먹지 않는 놈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를 중생들 중에 제일 의심이 많고 제일 영리하다고 하고 사람도 호의(狐疑)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말로 들어 봐서는 꼭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참 그럴까」하고 괜히 그런 생각 저런 생각 갖다 붙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의심 많이 하는 성질이 있어 군자를 만나도 도인을 만나도 의심을 많이 하는 성질이 있어서 이렇게 호의증에 걸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장가가면 의처증(疑妻症)이 걸리고 또 의부증에 걸려서 영감을 의심하고 그럽니다.
그렇게 의심할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내버려 두고 그런 세상을 살면 편한데 의심을 하면 사람의 마음이 안 편해지고 의심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백사불성(百事不成)으로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만날 사사건건 의심만 붙어 있으니 무슨 일을 누구하고도 같이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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