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大乘)의 자비 구세사상
대승 불법은 중생이 그대로 부처가 다 되어 있으니 몸뚱이가 나라는 생각만 쉬라는 것입니다. 소승불법 모양 저 혼자 나한이 되어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다면 초견성(初見性)만 해도 할 수 있습니다. 남의 상좌가 잘못하면 때리고 그런 가운데 그걸 초월해서 종일 만나 시비를 하였지만 나는 만난 일 없고 시비한 일 없고 그런 심정에서 얘기해 주고 가르쳐 줍니다. 그 사람은 물론 얘기해도 안 한 거고 얘기 안 해도 안 한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대승불법입니다. 대승불교의 이런 큰 불법을 성취하려면 이 몸뚱이를 초월하여 한국사람처럼 남 잘되면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도대체 남의 말 잘 안 듣는 그런 중생들 틈에 끼여 그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고 불법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내가 중생을 교화했다, 그 공이 내게 있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하라.」 이것이 대승사상(大乘思想)입니다.
소승은 본래부터 번뇌망상이 있는 것이니 이것을 끊어야겠다는 것이고, 대승불법은 내가 망상을 안내면 된다. 그 망상 자체가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자리에서 생각을 일으키니 망상일 뿐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소승불교는 탐진치가 있다고 하여 천만생을 돌아다니며 이걸 끊어 내려는 것이고, 대승불교는 「내가 망상을 자꾸 내기 때문에 번뇌가 계속되는 것이니 내가 생각 안내면 없다. 허공에서 망상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땅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하여 근본적으로 생각을 안내려 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빨리 끊어지고 훨씬 수월합니다. 예컨대, 가정에서 어머니가 애들이 잘못하면 나무라고 안 들으면 손찌검도 하고 때리기도 하지만 참말로 미워서 진심으로 그러는 게 아니고 사람 만들려고 벌을 주는 것입니다. 철이 없는 어린애니까 그런 나쁜 일 못하게 하느라고 겉으로 그러는 것이고 자비심으로 하는 거지 참으로 저놈 때려 없애야겠다는 생각이라면 그 사람은 지옥 갑니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그 사람 바로 잡기 위해서 빨리 부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아무 이해 상관도 없이 아무 조건 없이 일러 주는 것뿐이며 대승불교는 처음부터 이렇게 나가기 때문에 종일 얘기를 해도 아무 피로를 모르는 실천이며 보살행이고 수행입니다.
그러나 나한들은 이런 것에 대해 귀찮은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안 들으면 다 내 버리고 그만 도망가 버립니다. 고약한 놈, 바른 말 바른 대로 해 줘도 안 듣고 귀에 담아 줘도 못 알아들으니 그게 미워서 못 봐 줍니다.
그러니 소승은 애초에 번뇌를 끊어야 하고 중생사회를 멀리 해야 한다는 염세적(厭世的) 불교인데 대해, 대승은 번뇌만 없으면 그 마음이 곧 보리 불성자리이며, 중생·마음·부처가 하나이니, 오로지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는 구세주의(救世主義)인 불교입니다. 대승불교는 마음을 깨치면 번뇌가 곧 보리이고 중생이 곧 부처이므로 걸림이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대승불법은 그렇게 쉬워야 합니다. 「우리가 주다 주다 줄 게 없으면 눈도 빼 주라」는 말은 몸뚱이가 내가 아니고 눈이 보는 게 아니며 이 오관이 아는 게 아니고 마음이 보고 아는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이 눈 때문에 못 볼 내가 아니니 중생을 위해 완전히 빼 주는 것이며 설사 못 본다 해도 그래도 좋다. 내가 이렇게 착하게 육신을 정리해 가면서 다리 하나 끊어 달라면 잘라 주고 피 좀 빼 달라면 뽑아 줍니다. 그리고 「이 몸뚱이 죽어도 좋다. 당장에 쓰러지지만 내가 더 용맹정진해서 누구보다 자아완성을 위해서 부처 될 수 있다. 그래서 우주에 자유로운 나를 확보 해야지 항상 육체가 나라는 생각에 이끌려서 좋은 일에도 시비하고 나쁜 일에도 시비하고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말 안 듣는 못된 중생들을 백번 천번 일러 주게 되더라도 성내지 말아야 합니다. 안 들어도 그 사람 부처가 될 때까지 자꾸 따라다니며 일러 줘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가 성불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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