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아라한도(阿羅漢道)는 소승(小乘)의 이상

如明 2015. 11. 25. 06:49

아라한도(阿羅漢道)는 소승(小乘)의 이상

불교에서 소승·대승 나누는 데 소승의 아라한도는 소승불교의 성위(聖位)로서 곧 번뇌를 끊어가지고 망상을 쉬고 쉬고 하여 망상을 완전히 끊어서 남음이 없으면 이것이 나한인데 소승은 이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습니다. 이것을 소승열반(小乘涅槃)이라 하는 데 대승에 비해 마음의 경계가 적으므로 많은 사람을 실을 수 없다는 뜻으로 소승(小乘)이라 한 것입니다. 이들은 번뇌 망상만 끊으면 된다는 지론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마침내는 부서져서 수억만번 생겼다 없어졌다 그러는데, 이렇게 지구가 파멸되어 에너지로 돌아갔다가 또다시 지구가 건립되고 그러는 것을 불교에서 생겨서(生) 있다가(住) 부서져(壞) 없어진다(空)는 뜻으로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나한이 되면 지구가 부서져 다 없어지는 이때에도 몸뚱이가 허공에 가만히 있다는 것입니다. 늙지도 젊지도 않고 아무 생각도 없고 정말 편한 사람입니다. 이 천지에 허공이거나 아니거나 아무 상관없고 지구가 없어지거나 원자탄으로 부수거나 나는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생사 밖에 뛰어나서 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렇게 생사 밖에 뛰어났으면서 보살들처럼 중생을 제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생제도만 하면 곧 부처님께서 될 텐데 소승의 나한들은 남의 말 안 듣는 중생들과 이래라 저래라 잘한다 못한다 그러다 보면 번뇌가 또 일어나서 생사 중생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번뇌가 안 쉬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중생제도를 못합니다. 중생 잘못하는 것을 보면 꾸짖고 때려 주고 싶고 그러니 그것은 탐진치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중생 제도하려다 나중에 도리어 중생이 되겠다는 것이니 소승불교는 결국 공부가 다 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만 편한데 들어가 혼자 안주(安住)하고 있으니 이것은 염세주의입니다. 나한은 신통도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천대천만 해도 십억이나 되는 지구이니 굉장한 우주공간이지만, 지구의 천백억배 되는 삼천대천세계에 하루 24시간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고 치면 그 소나기는 마치 우주 폭포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뒤를 따라 연속 내려오니까 쭉 내려오는 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하나의 물방울의 연속인데 이런 소나기가 십억 백억의 지구에 하루 종일 내렸다고 하면 그 물방울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나한님네는 그렇게 내린 비의 물방울 수를 다 알 수 있습니다. 전자계산기나 되면 모르지만 그 많은 빗방울의 수효를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번뇌가 없으니 마음이 환하게 밝아서 다 보인다는 겁니다. 나한의 신통이 그만하면 그 마음이 그만큼 굉장하여 대자연계에 자유로운 힘도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나한의 특성 중 하나는 옳고 그른 것을 지킨다는 데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은 그르다는 한계를 두므로 자비심이 부족하고 대승심이 없다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