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미친 것도 꿈

如明 2016. 6. 4. 08:05

미친 것도 꿈

 

일본 식민치하에 있을 때 만주에 가 있던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부락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주에서 일본사람들이 만주를 점령하려고 만주 동쪽 땅을 토벌하려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한 사람이 어디를 갔다 오는데 자기 부락이 온통 수라장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와 가지고 무조건 한국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있기만 하면 총살시켜 버리고 석유를 뿌려 불을 질러 참멸시킨 것입니다.

동포와 가족들은 죽은 시체로 나둥그러져 있고 집과 재산은 탄 채 재만 남았고 온통 쑥밭이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런 비참한 광경을 보고서 그만 미친 사람 모양으로 고성을 지르고 대성통곡을 하며 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디 두고 보자, 내가 꼭 이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부산 가는 기차에 막 뛰어 오는 겁니다. 기차를 못 타게 하면 막 죽이려고 합니다. 「너희 놈들만 타라고 만든 기차냐? 왜 조선 사람은 못타느냐? 네 놈들만 잘 살 줄 아느냐?」고 두서도 없이 욕을 마구 하며 달리는 차에 뛰어올랐습니다. 감시원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목적지인 부산까지 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경찰서로 들어가서는 서장을 보고 내가 지금 돈이 하나도 없으니 당신이 돈을 내라는 겁니다. 하도 기세가 대단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당신이 누구요, 무슨 용건으로 왔소?」하며 호통을 쳐도 어서 잔말 말고 내가 필요한 돈이나 내 놓으라고 생떼를 쓰고 막 쓰러져 버리는 겁니다. 서장도 그 기에 눌려서 그만 얼떨결에 돈을 주어 보냈는데 이 사람은 도리어 고약한 놈이라고 마구 욕을 하며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 모두 나누어 주고 올 떼 갈 떼 없는 거지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정말로 미쳐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너무 분개한 일념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인간적인 힘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울다가 웃다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독립만세를 부르기도 하고 몇 달씩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얼굴도 별로 축난 것도 없고 힘도 더 셉니다.

이 사람의 소문이 굉장하게 나 있었을 무렵 그해 칠월 백중날 내가 어느 절에 가서 있을 적인데 마침 어느 날 그 절에 이 사람이 온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곁에 가서 「선생님 심정을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평생을 두고 울다 죽어도 분함이 풀리지 않겠지마는 마음을 진정하시고 방에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나 좀 합시다.」하며 좋게 대해 주고 자기 심정을 알아준다고 하니까 아무 말도 않고 방에 따라 들어 왔습니다. 「그동안 음식을 제대로 잡숫지도 않으셨을 텐데, 여기는 음식도 많은 데니까 오늘 여기까지 오신 김에 한번 실컷 잡수시기 바랍니다.」하고 상을 차려서 갖다 주고 옆에서 많이 드시라고 권하면서 먹는 걸 봤는데, 몇 달 동안 먹지 않고 있다가 먹으니 굉장합니다. 밥이 적은 듯싶어서 남은 밥 다 갖고 오라고 하여 주었더니 나물하고 김치하고 국하고 밥하고 주머니 속에서 자기가 차고 다니는 고춧가루를 꺼내서 큰 그릇에다 한데 붓고는 숟가락을 댓 개 가지고 척척 비비면서 침을 꿀꺽꿀꺽 넘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밥을 잡수시는 데까지 한번 잡숴 보십시오.」하니까 먹기 시작하는데 그 많던 밥을 다 먹는 겁니다. 소금보다 짠 김치를 막 먹고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어서 보통사람은 도저히 먹지 못할 짜고 매운 것을 막 먹는 겁니다. 원체 마음이 한데 몰려서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의식과 애착이 없다는 겁니다. 이 많은 밥을 다 먹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위장이 늘어나지도 않고 아무 탈이 없습니다. 소화도 잘 될 거라고 마음을 과감하게 먹었기 때문입니다. 옆의 일행에게 물어보니 석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얼굴 하나 축나지 않았고 기운도 펄펄하다는 겁니다. 마음속에 일본 사람 죽이려는 생각 하나뿐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모르는 정신일도(精神一到) 상태이기 때문에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굶었다는 생각만 안 하면 배도 고프지 않고 축이 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거리에 다른 미친 사람들을 보아도 남자, 여자 미쳐가지고 열흘씩 한 달씩 아무 것도 안 먹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얼굴이 그렇게 흉하게 축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 사람들 나체로 다닌다고 미쳤다고 하지만 이 사람 사실 미친 것이 아닙니다. 가령 연애하다 실패했다고 한다면 보고 싶은 그 한 생각뿐이어서 보고 싶으면 봐야 하는데 어떤 장애가 생겨 가지고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 분한 생각, 보고 싶은 생각 일념뿐이지 먹었든지 굶었든지 그런 것은 다 귀찮다는 겁니다. 이렇게 한 생각으로 미쳐서 딴 세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남자도 이렇게 일본 사람에 대한 적개심 일념으로 미쳐서 일본 경찰만 보면 욕을 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경찰서에 붙들려 유치장에 갇히었습니다. 독방을 정해 주고 음식도 자기 집에서 먹는 이상으로 갖다 주고 건강진단까지 해서 가두었는데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동안은 먹지 않는다 해도 닷새 이상은 굶을 수 없겠지 생각했는데 그러나 닷새가 되어도 계속 안 먹습니다. 그럭저럭 일주일이 되었을 때까지 물 한모금 안 마셨는데도 얼굴이 축나지 않고 눈 딱 감고 꼭 참선하는 사람모양 앉아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3주일이 되던 날 담당 의사를 불러 체중을 달고 건강진단을 했는데 3주일 전에 달아 보던 체중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더라는 것입니다. 진맥을 해 봐도 그대로 있고 그래서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러냐고 물으니까 담당 의사 말이 내가 알고 있는 의학지식으로서는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인 보고 얼마나 더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나는 그것을 대답할 기력도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이 체질 가지고 3주일 동안 조금도 축나지 않았으니 앞으로 또 3주일까지는 이렇게 더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이런 추측이 어떤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하면서 굳은 표정으로 나가더라는 겁니다.

그 후 또 3주일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동상같이 앉았는데 마지막 3주일째 되던 날 그대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6주일 4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동포를 학살한 일본 경찰들, 그리고 자기를 유치장에 가둔 사람을 원망하고 간 겁니다. 「고약한 놈들, 나쁜 놈들, 내가 뭐 잘못했다고.」 이렇게 원망하는 일념으로 차라리 내가 사형을 당하느니 네 스스로 깨끗이 이곳에서 죽자는 일념으로 지낸 겁니다. 처음 3주일 동안은 날짜가 지나간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담당자가 3주일이 지났다는 얘기를 해 주어서 비로소 3주일이 지나갔다는 인식을 했습니다. 만일 이 때 주위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6주일이란 날짜를 인식시켜 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보다 더 살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의 꿈이 깨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