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如明 2016. 6. 2. 07:29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그만 거울에 서울이 나타났듯이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소위 현실이라고 하는 대우주가 곧 아무 것도 아닙니다. 대우주라고 하는 것이 작은 점 속에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고 현미경으로도 절대 볼 수 없을 겁니다. 작다가 작은 것까지 없어져 버렸단 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대우주라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렇다보니 있다고 하는 대우주라는 것이 점도 아니고 점 속에 다 들었다 하더라도 점 그것마저 없어져서 없는 것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가령 없는 거라고 정한다면 있는 것이 없는 거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됩니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색불이공은 있는 현재의 모든 것은 허공과 같고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또 「공불이색」은 아무 것도 없는 것 빈 것이라 해도 그 가운데 온갖 것이 다 숨어 있다 그 말입니다.

마치 텅 빈 방에 사람이 대여섯 명이 잠을 자는데 한 사람은 대구 꿈을 꾸고 한 사람은 부산 꿈꾸고 한 사람은 오대산 꿈, 또 한 사람은 설악산 꿈, 또 한사람은 서울 꿈을 꾸고 있다면 방 하나에 대구를 건설하고 설악산·오대산·서울을 만들고 별별 세계가 다 건설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업에 따라 천당도 지옥으로 볼 수 있고 복 지은 사람은 지옥을 가도 거기가 천당입니다. 착한 일 했으니까 착한 마음에서 나타난 행복스러운 영화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죄 많은 사람은 천당에 올라가도 지옥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제 마음이 나타난 것이므로 지옥과 천당을 자유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그 결과를 임의로 도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과에 따라 탄생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곧 마음이 지옥으로 나타나고 마음이 천당 사람 몸뚱이로 태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 살았다 죽었다 하는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가령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도 꿈속에서 중생이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학을 한다, 철학·종교를 한다, 전쟁을 한다 해서 어느 나라는 지고 어느 나라가 이겼다고 하는 이 모두가 꿈입니다. 전부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석가여래께서 성불했다 그래서 49년 동안 중생을 제도했다는 그것도 모두 거짓말입니다. 이것이 다 꿈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내 꿈에 석가여래께서 지나가신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몸처럼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없는 것같이 보이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있는 게 없는 거고 없는 게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있다 없다」말하는 것이 다 틀린 겁니다. 있다 해도 안 맞고 없다 해도 안 맞고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 해도 다 틀리고 하나도 없고 말도 없고 글도 없는 것입니다.

글자는 본래 내용이 없습니다. 가령 있을 유(有)자를 본래 없을 유자라 했다면 없을 유자라고 현재도 사용할 것입니다. 글자 자체는 아무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있다 없다는 글자가 따로 있다는 말은 확실히 있다는 말이고 없다는 말은 없다는 말이 틀림없으며 있다는 말이 없다는 말도 아니고 없다는 말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확실히 우리는 다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러나 무엇을 가지고 어떤 게 있느냐는 것을 깊이 따져 보면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지금 없다고 그러지만 무엇을 가지고 없다고 하느냐? 허공을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허공도 없어지면 그때 가서 없어지는 거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모두 내 생각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내 생각이 이러니까 모두 생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또 생각이 그렇게 되면 그것이 나타나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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