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낮 꿈의 현실도 나

如明 2016. 6. 1. 08:31

낮 꿈의 현실도 나

 

꿈 자체가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며 동시에 꿈속에 있는 객관들도 다 내 마음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마이크 기둥도 저 나무도 탑도 석등도 종도 전부 다 <나>라는 것을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원리는 밤 꿈의 세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낮 꿈의 현실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낮 꿈, 밤 꿈을 다 깨어서 밤 꿈도 없어지고 낮 꿈도 없어져서 마음이 오직 드러난 밝은 세계, 그래서 거짓으로 존재하는 객관과 이 몸뚱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기분을 완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좋다 싫다 하는 기분, 밉다 예쁘다 하는 기분을 떠나야 됩니다.

모든 만물을 대할 때 모든 선입관·분별심 모든 기분을 떼어 버리고 무심하게 되면 곧 만물하고 나하고는 둘이 아니고 거리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경계가 끊어져 버려서 객관·주관의 분간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부처님이고 중생은 중생이고 보살은 보살이고 또 천당은 천당이고 지옥은 지옥이고 완전히 각각 다르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생들이 스스로 그렇게 다르게 만들어 놓으니까 그럴 뿐 실상은 다르지 않은 것이 달라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늘 하는 얘기이지만 육체만을 나라고 애착하기 때문에 모두 객관이 되어 주객이 벌어졌고 전 우주가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꿈에 보는 태양도 억만리 허공 위에 떠가지고 열과 광을 발산하여 제일 무더운 삼복중엔 머리가 뜨거워 모자 안 쓰고 우산 안 들고는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저 태양은 여러 수억만 년 동안 저 허공 위에서 열을 쬐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태양은 저 높은 위에 뜨겁게 있는 거다」는 기억이 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태양은 또 저렇게 먼 데 무한대로 먼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꿈에 가서 무한대의 허공을 나타나게 합니다. 생각 그것이 그대로 나타난 겁니다. 따라서 그 생각하고 태양하고는 거리가 없습니다. 생각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주관하고 객관하고는 거리가 없습니다. 주관 객관은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나>라고 하는 착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거리를 인정하게 된 것뿐입니다.

<나>의 발하고 머리하고 사이에는 거리가 있겠지마는 「나」하고는 거리가 없듯이 몸뚱이의 어느 곳이든 <나>하고는 거리가 없습니다. <나>하고는 뒤도 등도 아닙니다. 이게 그대로 나입니다. 내 등이 내 뒤가 아니고 가슴이 내 앞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전체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뒤도 없고 좌우도 없습니다. 발이 곧 <나>자신이므로 <내>밑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머리 또한 <나>이므로 머리가 내 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내 마음에서 나타난 객관 일체가 다 <나>이니 거기에도 거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경계와 경계가 없고 주관 객관 사이에 거리가 없습니다. 전 우주 무한대의 극대(極大)와 원자·전자 같은 제일 작은 극소(極小)가 서로 거리가 없습니다. 곧 하나라는 말이니 현실의 객관이 <나>고 마음이며 <내>가 곧 현실이고 마음이어서 둘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