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꿈속에 평생을 산 조신대사

如明 2016. 5. 29. 08:28

꿈속에 평생을 산 조신대사

 

여하튼 중생인 우리는 마음을 깨치지 못하는 한 모두 꿈속에서 사는 것인데 전부 자기 마음으로 꿈을 꾸어 가지고 그 속에서 시집간다, 장가간다, 살림살이 차린다, 아들딸 낳는다 하는 것이니 마치 아까 산골 밭에서 정신 이상 된 여자가 정상(正常)을 잃은 채 웃으며 행복한 생활을 의식하는 꿈속의 생활과 같습니다. 요새 꿈에 대한 학자가 과학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꿈이란 큰 꿈이나 작은 꿈이나 최고의 시간이 45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 45분이면 며칠도 되고 몇 년도 되고 일평생 되는 꿈으로도 된다는 것입니다.

조신대사의 실제 꿈을 이광수 선생이 「꿈」이란 역사소설로 엮어서 세상에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옛날 신라 때 조신대사라는 스님이 강원도 낙산사(洛山寺)에 있을 적인데 법당에 사시마지(巳時供養)를 올려놓고 경쇠(법당에 있는 작은 종)를 땡하고 치는 사이 깜박하고 졸음을 조는 동안에 80년 긴 꿈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쇠라는 종은 천천히 때리면 소리가 죽고 힘껏 빨리 때리고 가만히 있어야 소리가 죽지 않습니다. 그 경쇠를 때리는 순간은 몇 10분의 1초에 불과합니다. 깜박하고 조는 순간 중노릇하는 현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꿈속에 들어가서 그 고을 사또님 심부름으로 마을에 내려가는 도중이었습니다. 내려가다 보니까 단골 신도인 무남독녀 딸 하나가 있는 신도 집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됐습니다. 그 집은 다른 일가친척도 없고 살림은 한 300석 하는 시골의 부자였습니다. 그 처녀에게 장가를 들면 누구든지 300석을 얻어 팔자가 핍니다.

그 집은 1년에 몇 번씩 조신대사가 있는 절에 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때마다 그 처녀가 어머니를 따라오는 것을 보아 왔는데 이제는 시집갈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조신대사는 지나가는 길에 그 집에 들러서 인사나 하고 가기로 마음먹고 잠깐 방문했습니다. 사또님 심부름으로 어디까지 가는 연유를 말하니 돌아오려면 저물겠다고 하면서 집에 와서 저녁 자시고 가라고 친절히 해 줍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볼일 보고 늦게야 올라오다 보니 어두워지고 나서야 그 신도 집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그 신도 집에서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반찬감만 장만해 놓고 밥도 안 짓고 반찬도 안 만들고 있다가 조신스님이 들어오니까 하인에게 「밥해라, 반찬해라.」하며 부랴부랴 시켜 놓고는 스님과 법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안식구 모두인 모녀도 이제까지 밥을 먹지 않고 조신대사가 오면 같이 먹는다고 기다렸다가 밥상이 들어오니 같이 먹도록 했습니다.

그때는 불교가 크게 융창했고 스님들에 대한 대우가 대신보다 더 존경하던 신라 때였습니다. 딸 방에서 진수성찬을 차린 저녁 밥상을 놓고 셋이서 같이 먹고는 법문해 달라고 해서 아는 대로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그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모른다는 식으로 시간이 오래 지나가서 한밤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 사람들이 다 잠을 자는데 십여리나 가기도 어렵고 그 집에서는 자고 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그대로 자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 신도는 어떻게 된 건지 그만 자기 딸과 조신대사를 한 방에 가두어 놓고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조신대사는 그래서는 안 될 것인 줄은 알지만 어려서부터 잘 알고 서로 얘기도 하고 친숙하게 지내다가 그렇게 되어 놓으니까 그만 그날 저녁에 장가를 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절에는 다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심부름 갔다 온 사정을 보고할 수도 없고 그만 그 집에 숨어 가지고 머리를 길러서 상투를 얹고 결혼식할 새도 없이 신혼생활을 했습니다.

그 해에 단번에 아들을 하나 낳았고 소문도 없이 감쪽같이 그러고 있는 판입니다. 그러데 해 마다 아들을 낳아 꼭 달팽이 같은 아들을 수두룩하게 낳았습니다. 그 놈들이 자꾸 크고 2살 3살 되면 천자 다 외고 글도 가르치고 했는데 공부를 다 잘합니다. 이렇게 해서 8년만에 아들 8형제를 낳았습니다. 그때는 한문 짓는 어려운 문장인데도 글 잘 짓고 글씨 잘 쓰고 그림 잘 그리고 말 잘하고 얼굴도 잘 생겼고 이래서 서울에 올라가면 단번에 급제를 합니다.

아들들이 경상 감사·전라 감사도 있고 평안도 충청도 나중에는 팔도강산에 다 자기 아들들이 있게 돼서 나라 임금보다 오히려 권력이 센 편이 됐습니다. 집안 살림도 300석짜리가 이제는 10만석이 넘었고 아까 나귀 타고 간 처녀보다 훨씬 더 재미나게 잘 삽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죽고 둘째 아들이 죽었고 그리고 나서 한 10년이나 지났는데 아들 딸 형제가 다 죽고 며느리 다 죽고 손주들까지도 다 죽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끝내는 자기 마누라도 죽고 자기 혼자 늙은 몸으로 나쁜 부하들한테 재산도 다 빼앗기고 이제는 하인들까지 전부 다 달아나 버려서 자기 혼자만 남게 됐습니다. 아차하다가는 그 놈들한테 맞아 생명도 위험하게 되었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보니 있는 돈이나 꾸려 꽁무니에 차고는 팔도강산 유람차 나섰습니다. 구경 다니는 판입니다.

세상이 허망해도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 꿈을 깨어 가지고 자꾸 울어대는 그 여자보다 더 허망할 것입니다. 그래 이리저리 한없이 돌아다니다가 가을이 됐는데 해는 저물고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길가 잔디밭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신세 한탄을 하며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산 위로부터 절에서 종치는 소리가 은은히 울려 내려옴을 느끼고 근처 어딘가에 절이 있는가 보다 하고 가만히 살펴보노라니 자기가 10여 년 전에 살다가 떠났던 집 근처 낙산사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였고, 자기가 앉은 그 자리가 바로 자기가 살던 그 집터였습니다. 지금은 잔디밭이 되었고 쑥대들이 나오고 거기 있던 동네는 어디로 갔는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는 꼼짝없이 큰일 났습니다. 내 나이 벌써 아흔이 다 되어서 이제는 오늘밤에 죽을는지 내일 아침에 죽을지 모르는 판이 됐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하지 말라던 250가지 계를 낱낱이 다 파계하고 팔만 가지 세행(細行 : 주의할 작은 계)다 부숴 버리고 이제 눈만 감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갈판이니 생각하면 전신이 떨려옵니다. 이제 곧 죽게 생겼는데 부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은 다 범해 놨으니 진작 이렇게 허망한 줄 알았으면 차라리 장가 안 가고 그날 저녁 내가 절로 올라갔으면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 하루 저녁을 못 참고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이제 죽기만 하면 지옥행은 끊어놨고 아들딸이 또 그렇게 다 죽을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 몸은 늙고 곰곰이 신세를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동안 하던 공부나 열심히 했더라면 성불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아닌 자기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이 모양 이 꼴이 됐으니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던가 하고 탄식하며 두 다리를 뻗고 방성통곡하고 울다가 깨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자기가 깜빡하고 졸기 전에 경쇠를 치던 망치를 잡은 채 그대로여서 경쇠의 종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습니다. 몇 10분의 1초가 지났을까 말까 한 짧은 찰나에 90살이 지났으니 당시 스님의 나이 스물 대여섯 살이 되었다고 치면 한 60여년 근 70년쯤 지난 것입니다. 조신대사의 실제의 생활 경험이었고 인생의 일대 교훈이었습니다. 인간 세상이라는 게 일체의 꿈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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