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의 금강경

原 文 : 爾時 慧命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 非不衆生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 如來說非衆生

如明 2016. 3. 28. 09:46

原 文 : 爾時 慧命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 非不衆生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解 義] 그때 수보리존자님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하시기를, 『세존이시여! 이다음 말세에 사는 중생들이 그 업장이 두터워서 자성자리를 엿보기 어려울 터인데 이런 어려운 법을 듣고 신심을 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많은 법문을 가정을 해서 해 주셨지만 부처님의 마음자리에서 보면 한 법도 설명하신 일이 없다는 이런 말씀을 듣고 신심을 내겠습니까?』라고 여쭙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말세중생들이 비록 두터운 번뇌망상 속에 살고 탐·진·치 삼독에 심히 취해 있긴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중생이 아니고 중생이 아닌 것도 아니다. 중생이 아닌 것도 아니라 함은 중생이란 말도 아니고 중생이 아니란 말도 아니어서 중생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 하면 중생이다, 중생이다 하지만 여래는 중생이 아닌 것을 중생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법문을 듣고 배울 적에 어떤 선지식은 폭군이 되어가지고 하루에도 수백명씩 죽이고 그렇지만, 이것이 다 참으로 중생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 자기의 화신(化身)을 미리 나투어서 그 나라의 중생으로 태어나게 했다가 가혹한 벌을 주어 보이십니다. 중생들이 탐진치 삼독에 깊이 중독되어서 좀처럼 빠져나올 생각을 내지 않으므로 보살님네들이 여러 가지 방편을 가지고 중생들의 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런 방편을 베풀지 않고는 아무리 법당 지어 놓고 금강경 강의한다고 해 봐야 잘 안 옵니다. 그래서 먼저 이 세상의 현실이라는 것은 허망한 것이고 이 몸뚱이는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참다운 나>·<주인공>을 찾지 않고서는 정말 안심할 수 없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부터 넣어 준 뒤에 불법을 들려 줘야 들어갑니다. 그렇지 않고는 욕심 하나로만 꽉 차 있는 그 마음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보살님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만사에 뜻이 없는 가운데 아무 할 일 없고 말할 것도 없지만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여 일러주고 중생을 제도하고 그럽니다. 아무 것도 없이 법문 좀 해달라고 그러면 말해주고 하지만 누가 와서 나한테 법을 배워 갔거니 하는 것도 없습니다. 매일 와서 법문 듣고 그래도 그 선지식은 어떤 사람인지 처음 배우러 온 것같이 그렇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 보면 당장 되는데 저 사람이 지금 나한테 쓸모없을 사람인가 쓸모있을 사람인가 그걸 자꾸 점검을 해 가지고 보니까 얼굴이 익어집니다. 서울역에 하루 십만명이 내려도 아무 생각 없이 보면 한 사람의 얼굴도 모르게 됩니다. 중생들은 그 많은 남녀노소를 낱낱이 따져서 저건 좀 잘났다, 저건 아주 잘났다 저건 좀 못났다, 낱낱이 따져서 보내지 그냥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 식색(食色) 두 가지 욕심이 머리에 차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래서 애착이 많은 사람, 가령 음심(淫心)이 많은 사람은 제 눈에 좀 드는 사람이 있으면 며칠까지 그만 얼굴이 환히 나타납니다. 「아! 그 처녀 잘났더라. 그 총각 잘 났더라.」해서 그만 4, 5일씩 일주일을 눈을 감아도 환히 알게 됩니다. 백년이 지나서 만나도 「아이고 그 사람이로구나.」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금방 만났다 돌아서 가지고도 또 처음 인사합니다. 그러니까 한 절에서 3년이나 같이 공부하고는 바랑 짊어지고 간다고 서로 떠나서 그 밑의 마을에 가서 만나면 처음 만난 사람처럼 초면인사를 하는데 그것은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세속 선비들에게 공부하는 이가 욕을 먹는 수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생겼더니 그 뒤에 1년 뒤에 가서 만나 보니까 영 모른 체 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들이 무심한 마음을 배우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인데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세속 사람들은 중이 음흉해서 그렇다고 욕하는 수도 있습니다. 공부 한참 하는 사람들끼리는 무심 공부에만 열중하다 보면 하루에도 한 두서너 시간씩 서로 법담(法談)을 주고받고 얘기한 사람도 다른 절에서 여러 사람 가운데 만나면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어디 있는 사람인 줄 모르겠다고 어리벙벙해집니다. 두 사람이 다 그러면 다행이겠는데 한쪽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경우엔 저하고 얼마나 말을 많이 하다가 이제 겨우 열흘도 못 됐는데 「어디서 보긴 봤는데 어디 삽니까?」하고 물으니 거짓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는가」하고 웃습니다.

그러니 이런 경지가 돼야 공부가 될 수 있지 그만 사사건건 걸려 가지고 칠전팔도(七顚八倒)로 이리 엎어지고 저리 자빠지고 하면 그런 사람은 공부가 좀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이제 탁 끊어 버리면 끊어집니다. 마음이 굳기만 하면 결정법이 아니고 잠깐 생각을 길들여서 업으로 그렇게 된 것이므로 한 생각 없이 청룡도를 내어서 딱 끊어 버리면 끊어집니다. 그런 애착이 남녀 간에 비교적 여성들이 남자들 보다 더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은 오백계를 받습니다. 애기 낳아 키우는 것만 보아도 남자의 천배 만배나 됩니다. 남자에게 애기 낳아서 키우라면 다 도망가고 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성불하려면 먼저 남자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여자도 마음씨를 대범하게 해야지 너무 간을 내어 먹일 듯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말세중생이 독한 탐진치에 취해서 제 정신을 못 차리고 욕심으로만 산다고 하지만 무심한 본 마음자리가 있는데 그 마음이 미해 가지고 지독한 중생놀음을 하는 것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보실 때는 중생들이 중생놀음 하는 짓거리는 다 술 취한 주정뱅이 노름으로 보십니다. 술이 좀 덜 취한 중생도 있고 아주 곤드레만드레로 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독주를 마시고 취한 사람, 좋은 고급술을 마시고 취한 사람도 있어서 그 취한 모양과 정도가 다른 것뿐입니다. 그러나 많이 취한 사람이나 좀 덜 취한 사람이나 술만 깨어서 제 정신을 차리면 다 멀쩡한 사람이 됩니다.

이와 같이 말세 중생을 술이 아주 심하게 취한 사람에 비할 수 있으니, 술이 취했다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 중생들도 탐진치 삼독주(三毒酒)에 취해 있는 부처고 보살일 뿐이니 이름만 중생이라고 지었을 뿐이지 불보살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술만 깨면 곧 성한 사람으로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이므로 말세중생도 중생이 아니라 한 것입니다.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에서 같은 얘기가 나왔고 여러 번 중복된 얘기이므로 여기서는 이만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