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주의 모든 것

[스크랩] 선에서 나오니 능엄주를 염송하고 있더라

如明 2012. 7. 15. 20:16

[선우님 질문입니다]

 

지난 번에 올리신 글중에 이런 것이 있더군요. "선에서 나오니 능엄주를 염송하고 있더라." 여기에 대해서 좀 자세히 말씀 좀 해주세요. 능엄주를 염송하며 선정에 들었다가 나온 것 같지는 않고, 화두를 들고 선에 들었다가 나와보니 능엄주를 염송하고 있었던 것 같은 데...

그리고 궁금한 것이 또 하나 있어요. 화두를 들고 참구하다보면 쨍하니 마음이 맑아지고 가을하늘 처럼 청명해지다가 문득 시간이 얼마 안지난 것 같은 데, 생각보다 많이 지나가는 것 같은 것. 이런 상태를 더 가면 어떤 경계가 나오나요?
작년에 대전 구도회(칠불사)에서 요가를 하고 나오다가 학교운동장에서 하늘을 문득 보는 순간 이런 느낌이 밀려오더라구요. "저하늘과 내가 둘이 아니다." 뭐 우아일여니 그런 것을 생각하고 했던 것은 아닌 데, 그렇게 느껴지더라구요. 요런 망상은 뭔가요? (스님, 공부나 하지 자꾸 쓸 데없는 것 묻는다고 나무라실거죠? 그래도 궁금한걸요.)

 

지난 번 초파일에 스님을 뵈러 대전에 갔다가 제가 보낸 마음의 파장의 메아리가 있어서 그리로 갔습니다. 역시 새카만 중생이죠?

 

 

[종성스님 답변입니다]

 

선방 스님들 하고는 참선에 대한 자기의 증험을 얘기하면 금방 이해를 하지요. 왜냐. 그 정도는 웬만한 수행을 하신 스님이면 다아는 당연한 것이거든요.
그러니 말이 적어도 그저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되지요. 허나 글자로만 쓸 때는 글자의 한계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꼭 글자 한자 가지고 따질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또 글로 설명을 들어서 알았다고 한다면 나중에 홀로 참선에 깊게 들어갔을 때 그 알음알이가 엄청난 장애로 다가오는 경계가 있어요. 이게 들어갈 수록 워낙이 미세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작은것 하나일지라도 그냥 못지나칩니다. 예를 들어 초고성능 정수 필터기가 된다고 봐도 좋습니다. 스스로에게 걸려버려요. 그러니 이게 참 어렵구나! 하고 돌아버릴 때도 많았어요.

이공부는 자연스런 고요함이 있어야 되거든요. 예를들어 흙탕물을 가라앉칠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저 가만히 고요하게 내버려 두면 저절로 가라앉잖아요. 가라앉다 보면 종국에는 밑바닥이 드러나겠지요. 禪이란게 이 원리 이잖습니까. 저는 책을 거의 안봐서 좋은 표현은 못씁니다. 단지 제가 증험했던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마 제가 쓰는 단어를 유심히 본 분은 잘 아실겁니다. 왜 옛날부터 사람들이 도 딱으려면 짐싸가지고 산으로 들어가겠습니까? 바로 고요함을 만들기 위해서 이겠지요. 자기안의 고요함을 만들려니 환경도 좀 고요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내 참선도 자기안의 고요함을 만들어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생각의 파도가 가라 앉아야 보일게 아니겠습니까! 지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면 요게 사량분별심만 늘려갈 수가 있어요. 저는 체질이 그런가 몰라도 조금 빨리 집중에 듭니다. 토굴에 있을 때 능엄주 수행을 병행 했었어요. 물론 다 외우죠(말은 어렵다 쳐도 길기는 왜이리 길은지)

대여래 불정능엄주에 궁금한것이 있어서, 참선중에 자연스럽게 그게 화두아닌 화두로 잡혔어요. 그러다 몰입에 들어서 나중에 깨어보니(시간 가는 줄 몰랐음) 역시 능엄주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냥 쭈루륵 능엄주가 보인다고나 할까요. 입으로는 속으로 그걸 외고 있고요. 그래서 이게 바로 옛 선사들이 얘기한, 화두는 의식이건 , 무의식이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것 같더라고요. 무의식에서도 이어졌거든요.

또 한가지는 저는 밤중에 잠자기 전에 능엄주를 누워서 암송을 하다 저절로 잠들어요. 근데 신기한건 아침에 깨려고 할 때의 그 비몽사몽간의 순간에서도 어떤때는 능엄주를 속으로 암송하고 있는 거여요. 참 이게 신기하더라고요. 그 땐 제가 꼭 잠을 안잤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근데 분명 잤거든요.

뭐 이런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물어보시니까 할수 없이 쓰는 것이지 다음 부턴 안쓰겠습니다. 선우님의 쓰신글에 참선을 죽 하다보면 마음이 쨍하니 맑아지고 가을 하늘처럼 청명해지다가 ,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바로 그겁니다! 거기서 쨍!이란 표현, 고 표현처럼 어떤 때는 평소에 궁금했던게 고 궁금한 생각을 그 순간에는 안했어도 바로 쨍하고 터져 나올 때가 있어요.

이게 바로 생각으로 아는게 아니거든요. 흙탕물이 가라앉다 보니까 저절로 밑바닥이 드러난 거지요! 그렇치 않습니까! 근데 이미 알음알이로 것넘고 있으면 절대 쨍이 안옵니다. 그게 그렇게 되있어요. 그래서 제가 항상 모르는게 더 났다. 라고 강조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 토굴방에 붙여놓은게 " 안다고 생각을 했다면 곧 바로 헛공부 했다고 생각하라! 그저 모를 뿐인것을 "

근데 나중에 숭산스님이 쓰신 책을 보니 " 그저 모를 뿐인 마음을 강조하시더라고요. 저는 스스로의 체험으로 모르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걸보고 역시 자기안에 다 있는 거구나!. 경전도 자기안에 있는 것이고!

자꾸 相이 없어지다 보면 말로만 하나가 아니라 한마음이 될때가 많이 느껴 집니다. 그건 정상 입니다. 스님들은 부지기 수여요. 그 상태에서 자꾸 나아가다보면 자꾸만 평소에도 생각이 잘 일어나지를 않아요. 어떤 땐 멍하다고나 할까. 근데 멍은 아녀요.

중요한건 생각이 잘 일어나지를 않으면서 자동적으로 좋고, 나쁘다라는 분별심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분별을 안하는게 아니라요. 저절로 그렇게 돼요.
또 저절로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나오는 그대로 , 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지 거기에다 그림자를 붙일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림자는 着이라!
우린 모두 같은 길을 가는 도반 입니다!. 참선도 꾸준히 정성으로 안하면 군대에서 강등 되듯이 강등 됩니다.

출처 : 아비라
글쓴이 : 어질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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