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실패 후 절망감에 능엄주 시작
매일 120회 독송…“삶의 든든한 버팀목”
능엄주를 시작한지 8년, 나의 하루는 능엄주로 시작해 능엄주로 마무리된다. 하루 120독을 하기 위해서는 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능엄주를 외워야 하는데 이제 그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한 번 독송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처음 10분 정도에서 점차 속도가 빨라져 이제는 1~2분이면 가능해졌다. 업장 두터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능엄주는 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내게 튼튼한 배요 삶의 길을 일러주는 좌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를 만나는 순간까지도 나는 이렇게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 군대제대 후 나는 곧바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운 좋게 합격해 1년여 근무했었다. 하지만 늘 접하는 사회의 부조리는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되는지를 회의케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게 됐다. 그러나 사법고시는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늘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나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붙어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고 그 결과 나는 30대 후반까지도 고시에 매달리게 됐다. 고시도 경제적인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열정과 이상이 있어도 쉽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고시를 포기하자 공허감이 너무 컸다. 나는 마음의 안정을 위해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내 성격이 그렇듯 단전호흡도 열심히 했다. 특히 인산쑥뜸요법과 병행해 정진하는 게 좋다고 해서 매년 500장씩 6년간 3000장의 뜸을 놓았을 정도로 나는 극심한 고통을 참아가며 단전호흡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쑥뜸으로 인한 흉터만 길게 남았을 뿐이다.
그러던 97년 늦여름 어느날 아는 사람을 따라 삼천포에 있는 용운사에 놀러가게 됐다. 그런데 일타스님의 상좌라는 돈조 스님이 ‘예불참회문’을 건네주며 “이 안에 능엄주가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 정수리에서 나온 진언이므로 마음과 입으로 정성껏 외우면 온갖 죄업이 소멸되고 청정한 본래의 자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온갖 잡념이 끊이지 않을 거라는 말에 다음 날부터 나는 능엄주를 독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음도 의미도 모르니 따분했고 1독 하는데도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만 둘까 하다가 능엄신주 공덕편을 소리를 내어 읽으며 스스로 위안을 찾고자 했다. 초기에는 하루 3~12독 정도로 했다. 능엄주 덕인지 IMF사태로 인한 구조조정 속에서도 불안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까지 생겼다. 그래서 2000년 1월 1일 아침마다 가까이에 있는 호국사에 가서 매일 108배와 함께 능엄주를 24~32독으로 늘렸으며, 다음해인 2001년도는 60~80독으로 더욱 높여 열심히 정진했다. 한때는 상기증세로 고생도 했지만 그럴 때면 절수행과 선체조에 비중을 더 고 능엄주 독송 수는 약간 줄이면 괜찮아지고는 했다.
그렇게 약 6년간 혼자서 참으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오래되다보니 내가 제대로 하는 건지, 또 용어에 대한 의문점이 생겨 인터넷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능엄주와 관련된 카페들도 여럿 있었고 그곳의 도움으로 정진한 결과 나의 능엄주 공부는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내게 큰 시련이 다가왔다. 2003년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작년에는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둘째 달이 약대에 떨어진 것이다. 나는 깊이 절망했고 능엄주를 놓았다.
회사원
<2005-10-26/826호>
입력일 : 2005-10-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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