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열반 부주생사
「그 마음을 어떻게 두고 어떻게 가져야 하며 번뇌 망상을 어떻게 항복 받느냐?」(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하는 데 대해서 이론적으로 「내가 꼭 불법을 체득해야 하겠다. 확실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아 증득해야 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결정된 사람의 입장에서 묻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고, 또 실제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은 초심보살(初心菩薩), 곧 견성한 입장에서 묻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응무소주>(應無所住)해서 이생기심(而生其心)하라는 도리를 여러 백번도 더 말했지만 이것은 생사에도 주하지 말고 열반에도 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정말 진실하게 발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까딱하다가는 열반에 주하지 않으면 생사에 주하거나 두 군데 다 주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가 대아라한(大阿羅漢)이니 욕심을 떠난 아라한 가운데 제일 가는 이욕아라한(離欲阿羅漢)이라」고 하셨듯이 수보리존자는 이미 팔만사천대겁(八萬四千大劫)을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일초 동안에 지나간 것처럼 잠깐 지낼 수 있는 공부가 된 분입니다. 그래서 수보리존자는 열반에 들어가 있지만 나는 나한이라는 생각도 없고 이런 걸 증득했다는 생각도 없고 생각 없다는 것도 없고 그런 줄 알고 앉아 있는데 그렇게 된 수보리를 지금 아상 . 인상 . 중생상이 있다는 걸로 부처님께서 몰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보고 저렇게도 말해 보고 갖은 짓을 다해 가지고 수보리가 알아챘습니다. 이제는 생사열반에 주하지 않고 그리고 나한들처럼 중생제도 집어치우고 염세주의자로 앉아 있지 않고 이제는 보살행을 해야 하겠으니 세상에 나와 보시도 하고 계행까지도 낱낱이 잘 지켜서 여자를 대하여서도 아무 생각이 없이 지킬 수 있는 분이 된 것입니다. 나한만 되면 일체 생각이 뚝 끊어지지만 이 현상계 생사고해에는 안 나가려고하여 열반에 애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는 진짜 열반이 아니다. 진짜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열반도 아니고 생사도 아니고 부주열반 부주생사(不住涅槃 不住生死)하는 것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그게 어떤 것이냐, 한 생각도 없는 열반에 머물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망상 번뇌에도 머물지 않고 그러면 그런 보살의 주체가 어떤 것이냐? 그것은 지금 자꾸 따지고 캐내려는 게 그겁니다.
일체 중생이 중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중생이고 또 일체 부처가 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부처고 일체 불법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불법이고 이러는 것이 지금 열반에도 주하지 않고 생사에도 주하지 않는 그걸 알아차리도록 하느라고 「일체 불법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불법이다.」 하는 말이 여기저기 도 주하지 않고 지도한다는 그 말인데 이 말이 어디로 떨어지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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